지방의 한 지자체에서 근무하는 7급 공무원 김 모(44)씨는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비혼인 김씨는 특별한 독신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치열하게 수험 생활을 거쳐 입직하고 격무에 치여 살다 보니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겼다.
김씨의 부서원 6명 중 2명은 만 8세 이하 자녀가 있어 매일 2시간씩 단축근무를 하는 ‘육아시간’ 제도를 쓴다. 오후 4시가 되면 아이를 데리러 간다며 서둘러 짐을 싸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씁쓸함과 상대적 박탈감이 밀려온다. 그들이 떠난 뒤 쏟아지는 민원 전화와 마감 직전의 긴급 보고는 고스란히 김씨와 남은 동료의 몫이다.
김씨는 “여기저기서 먼저 퇴근하고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울리는 전화기를 붙잡고 있을 때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어 솔직히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싶다”며 “하지만 어렵게 들어간 공직이라며 자랑스러워하시는 늙은 부모님의 눈치가 보여 매일 사직서를 가슴에 품은 채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저출생 극복을 목표로 공직사회 내 모성보호 제도를 전폭적으로 확대한 가운데, 정작 현장에서는 제도의 빈자리를 메우는 비혼·무자녀 공무원들의 업무 과중과 피로도가 한계 수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상 육아휴직과 단축근무 이용률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대체인력 없는 복지’의 기회비용을 동료들이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공직사회 내부 균열을 부추기는 뇌관으로 작동하고 있다.
육아휴직 1만 9000명 돌파…‘하루 2시간 단축’ 육아시간도 급증
26일 공직사회에 따르면 인사혁신처가 집계한 지난해 육아휴직 사용 국가공무원은 총 1만 9105명으로, 2010년대 중후반 연간 1만 명 안팎에 머물던 수치가 2만 명 선에 육박할 정도로 가파르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선 현장의 체감 공백을 키우는 요인은 ‘육아시간(하루 최대 2시간 단축근무)’ 이용의 폭증이다. 정부가 대상 자녀 기준을 기존 5세 이하에서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로 확대하고 사용 가능 기간도 늘리면서, 지자체와 중앙부처의 육아시간 이용 인원 및 사용 건수는 최근 3년 새 가파르게 증가했다. 과거 일부 영유아 부모의 일시적 배려에 그쳤던 2시간 조기 퇴근이 공직사회 전반의 보편적 권리로 정착된 것이다.
하지만 장기 휴직과 매일 2시간의 단축 근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동안 이를 메울 대체인력 충원 체계는 전혀 작동하지 않으면서, 현장에서는 “모성보호의 정착이 비혼·무자녀 동료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업무 독박이 되고 있다”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오후 4시 이후 민원은 남은 자의 몫”…제도 사각지대가 낳은 ‘비용의 외주화’
현장 공무원들이 체감하는 가장 큰 모순은 오후 시간대 벌어진다. 자녀를 둔 동료가 육아시간을 사용해 오후 4시 전후로 조기 퇴근하면, 업무 마감 시간인 오후 6시까지 몰리는 대민 민원 응대와 상급 기관 긴급 현안 보고는 고스란히 남아 있는 비혼·무자녀 직원의 몫으로 돌아온다.
육아시간은 복무규정상 결원이 아닌 ‘특별휴가’로 분류되기 때문에 대체인력 지원이나 기간제 채용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 장기 육아휴직 역시 공직사회 특유의 ‘총액인건비제’와 부서 정원(T/O) 규제에 묶여 휴직자가 발생해도 정기 인사철까지 수개월간 결원 상태가 방치되기 일쑤다. 한시임기제 공무원 등 대체인력이 충원되더라도 행정 처분 권한이나 복잡한 인허가 업무를 온전히 맡기기 어려워 고난도 업무는 다시 남은 정규직 동료들에게 재분배된다.
법정 ‘업무대행수당’ 20만 원조차 육아시간엔 0원…양육자도 ‘수당 미지급’ 냉가슴
제도적 보상 체계 역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행 대통령령인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제14조의2에 따르면, 병가·출산휴가·육아휴직이나 시간선택제전환공무원의 업무를 대행하는 공무원에게는 월 20만 원의 ‘업무대행수당’이 지급된다.
그러나 ‘하루 2시간 단축근무(육아시간)’는 휴직이나 시간선택제 전환이 아닌 유급 특별휴가 형태로 규정돼 있어, 동료가 매일 2시간 분량의 업무와 민원을 대신 떠안아도 업무대행수당 지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결국 국가가 제공해야 할 저출생 복지 비용을 동료 공무원의 ‘무보수 초과 노동’으로 외주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육아시간을 사용하는 양육 공무원들의 처지가 편한 것만도 아니다. 자녀 병원 진료 등으로 육아시간을 쓰고 복귀해 밀린 업무나 국정감사 등 현안으로 불가피하게 야근하더라도, 현행 규정상 ‘육아시간을 쓴 날에는 초과근무 수당을 일절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묶여 무보수 야근을 감내해야 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육아시간을 사용한 날이라도 불가피하게 야근을 했다면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인사혁신처와 행정안전부에 제도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다.
행정 전문가들은 저출생 대책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행정학 전문가는 “모성보호 제도가 정착하려면 혜택을 누리는 공무원뿐 아니라 그로 인한 공백을 물리적으로 지탱하는 동료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병행되어야 한다”며 “단축근무 발생 시 남은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금전적 보상과 승진·인사상 가점을 제도화하고, 지자체와 부처가 즉각 가동할 수 있는 상시 대체인력 풀(Pool)을 의무적으로 구축해야 공직사회의 내부 균열을 막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