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남정훈 기자] ‘홍철 없는 홍철팀’의 야구 버전인가. ‘최형우 없는 최형우 시리즈’가 될지도 모르겠다. 재밌는 건 최형우 본인도 자신이 선발로 나가지 않는 게 맞다고 인정한다는 점이다.
정규리그 2위 삼성과 3위 KIA의 플레이오프는 ‘최형우 시리즈’가 될 것으로 보였다. 2011~2014년 삼성의 통합우승 4연패를 이끌며 ‘삼성 왕조’의 4번 타자였던 최형우는 2017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었고, KBO리그에서 100억원 시대를 열어젖히며 KIA로 전격 이적했다. 이적 후 KIA의 한국시리즈 2회 우승(2017, 2024)을 이끈 최형우는 2025시즌을 마치고 다시 FA 자격을 얻었고, ‘친정팀’ 삼성으로의 컴백을 선택했다.
그러나 최형우가 선발로 뛰는 모습은 자주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규시즌 막판 햄스트링 힘줄 부상으로 이탈했던 삼성 간판타자 구자욱이 부상을 어느 정도 회복하긴 했으나 수비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최형우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선 좌익수 수비를 나가야 하지만, 1983년생으로 어느덧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최형우에게 단기전에서의 수비를 기대하긴 어렵다. 결국 최형우는 대타 요원으로 뛸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로 취소되긴 했지만, 25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2026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삼성 박진만 감독은 김지찬(중견수)-김성윤(우익수)-구자욱(지명타자)-디아즈(1루수)-강민호(포수)-박승규(좌익수)-김영웅(3루수)-이재현(유격수)-류지혁(2루수) 순으로 라인업을 짰다.
최형우를 라인업에서 뺀 결정애 대해 “구자욱의 몸 상태에 따라서 라인업 변동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구자욱이 많이 호전되어 타격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런닝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수비를 맡기기는 어렵다. 최형우가 좌익 수비를 나가냐, 못 나가냐인데, 단기전이다 보니 수비의 중요성을 먼저 생각했다. 구자욱을 먼저 지명타자로 쓰고, 박승규가 외야에서는 컨디션이 좋다는 판단이라 박승규를 좌익수로 넣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자욱이 수비가 된다면 팀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구자욱이 팀 타순에 있고, 없고가 큰 차이라 생각해서 최형우를 벤치에서 출발시키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경기가 취소된 뒤 최형우는 취재진 앞에 섰다. ‘최형우 시리즈’가 불리는 것을 아느냐 묻자 최형우는 쑥스럽게 웃으며 “너무 거창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중용되지는 않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한 뒤 ”저는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도 제가 선발로 나가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기려면 이게 최선이다“라고 답했다.
KIA는 최형우가 나간 빈 자리가 클 것으로 예상됐지만, 2년차 신예 박재현의 급성장 등으로 최형우의 빈 자리를 메워냈다. 최형우, 박찬호 등 주축 야수들의 이탈로 하위권 평가를 받았던 KIA는 정규리그를 3위로 끝냈고, LG와의 준플레이오프도 3전 전승으로 빠르게 뚫어냈다.
자신의 떠난 자리를 후배들이 잘 채워서 흐뭇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최형우는 “흐뭇하다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알아서 잘 채운거죠. 떠난 사람이 흐뭇하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요?”라면서 “전 소속팀을 플레이오프에서 만나서 기분 좋고 설렌다. 재밌을 것 같다. 연락도 많이 했지만, 내일부터는 최선을 다 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KIA 후배들과의 연락 중에 기억나는 것 있느냐 묻자 “많이 뭐라고 했죠. ‘왜 이렇게 잘하냐’고, ‘원래 그 정도 아니지 않냐’고, ‘왜 미쳐 날뛰냐’라고요. 진짜 LG와의 준플레이오프 때는 말도 안 되게 잘 하더라고요”라고 들려줬다.
삼성으로선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최고의 대타감을 보유한 셈이다. 다만 최형우를 언제 활용하느냐에 따라 최형우가 좌익수비를 나가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최형우로선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그는 “경기 후반부에라도 수비 나가라면 나가야죠. 근데 경기 시작 때 나가는 것도 긴장되고 힘들지만, 뒤에 나가면 진짜 다리가 떨릴 것 같다. 근데, 제가 굳이 수비를 해야할까요?”라며 최대한 수비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뜻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대타로 나가는 상황은 부담스럽지 않느냐 묻자 최형우는 “타석에서는 부담감을 갖는 스타일이 아니다. 수비는 제 영역밖에 있지 않습니까?”라며 웃었다.
2위로 플레이오프에서 기다리고 있는 삼성 입장이긴 하지만, 전력이 완전치는 않다. 구자욱의 수비 불가도 그렇지만, 마운드에서 35세이브로 구원왕을 차지한 김재윤이 부상으로 인해 플레이오프는 물론 한국시리즈에 오르더라도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최형우는 “어제 그 소식을 듣고 당황스러웠다. (김)재윤이의 공백이 크지만, 다른 젊은 투수들이 잘 할 것이다. 팀 분위기는 좋다. 크게 동요되고 그런 것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KIA의 핵심 타자인 김도영 얘기를 꺼냈다. 2003년생 김도영은 최형우와 스무살 차이나는 선후배 사이다. 김도영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최형우는 웃으며 “김도영 얘기는 지겹지 않으세요? 잘 하죠. 최고죠. 지난해까지만 해도 도영이에 대해 ‘정말 잘한다. 근데 자주 아프다. 유리몸이다.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프지 않아야 한다’라고 얘기했는데, 이제 아프지도 않잖아요. 이제 완벽한거죠”라고 스무살 차이 후배를 한껏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