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1942∼2020)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이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참단산업인 반도체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우리나라가 초일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과학기술과 첨단산업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작용했다. 이 선대회장의 통찰과 추진력에 힘입어 대한민국 반도체 역사를 이끌어 온 삼성전자는 올해 분기별 영업이익 107조원(3분기)을 달성하며 국내외 기업 통틀어 새역사를 썼다. ‘바통’을 이어받은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초격차를 실현한 반도체산업을 발판으로 삼성의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
25일 이 선대회장의 6주기를 맞아 삼성전자가 ‘메모리 왕좌’를 굳건히 차지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다진 그의 결단과 리더십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1974년 1차 오일쇼크 당시 삼성전자 안팎의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32살의 젊은 동양방송(TBC) 이사였던 이 선대회장은 자금난을 겪고 있던 한국반도체에 개인 재산을 투자하며 반도체산업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삼성전자 창업주인 아버지 이병철 창업회장마저 “시기상조”라며 인수를 반대했지만 이 선대회장이 “자원이 없는 한국이 살길은 고부가가치 첨단기술뿐”이라고 설득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후 이 선대회장의 진두지휘로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은 기술 혁신을 거듭했다. 굴지의 경쟁사들이 주춤할 때 6인치·8인치 웨이퍼 및 신규 라인을 선제적으로 구축하는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을 개발한 데 이어 1993년에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랐다. 사업 초기였던 1975년 22억600만원에 불과했던 삼성전자의 전사 영업이익은 올해 368조~37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약 17만배의 성장이다.
이 선대회장이 남긴 유산은 반도체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1987년 이병철 창업회장 별세 이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과감한 투자와 기술 혁신으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발언으로 대표되는 ‘신경영 선언’과 1995년 구미사업장의 불량 휴대전화 15만대를 불태운 ‘애니콜 화형식’은 질적 성장과 품질 경영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철학으로 전문가 제도를 도입하는 등 핵심 인재 확보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이 선대회장은 2014년 5월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6년5개월여간 병석에 있다 2020년 10월25일 향년 78세로 작고했다.
지난 23일 경기 수원 선영에서 열린 6주기 추도식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이재용 회장을 비롯해 딸인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 등 가족들과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28일에는 경기 용인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에서 이 회장과 모친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총수 일가가 참석한 가운데 세계적 연주자들이 공연하는 6주기 추모 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다.
한편, 27일로 회장 취임 4주년을 맞이하는 이 회장은 별도 행사나 메시지를 준비하는 대신 평소처럼 경영활동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부친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및 차세대 반도체 시장의 글로벌 주도권 유지와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 강화를 위한 기술 투자와 인수·합병(M&A) 전략 등 ‘하나의 삼성’ 시너지를 극대화할 구상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