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자가 3년여 전 세종에 처음 내려왔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이면 짙푸른 나무 그늘이 거리를 덮으며, 가을에는 붉고 노랗게 물들어 운치를 더하는 것. 심지어 겨울에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인 모습까지 사계절을 그려내는 나무를 바라보는 것이 또 그 마을을 살아가는 재미이지 않나. 하지만 세종에서는 그런 풍경을 마음껏 누리기가 쉽지 않았다. 반듯하게 뻗은 도로와 가지런히 들어선 아파트, 잘 정돈된 공원은 계획도시 특유의 세련미를 자랑했지만, 거리의 나무들은 어딘가 앳된 모습이었다. 나무의 키가 작거나 가지가 성기기 일쑤였다. 울창한 나무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그리울 때면 세종 외곽이나 조치원 인근 고복저수지까지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래도 부족하면 공주나 옥천, 대전으로 차를 몰았다.
“신생도시 외곽에 스마트도시까지”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들은 조금 풍성해졌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게 10여 년 갓 넘은 신생도시의 숙명일지 모른다. 건물은 몇 년이면 들어서지만 울창한 가로수와 숲을 이루기까지는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이 필요하니 말이다. 여전히 ‘신생도시’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그나마 시골 내음 나는 세종 외곽에선 미래도시 조성이 한창이다. 합강동 5-1생활권 일대의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다. 스마트시티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을 도시 운영에 접목한 도시다. 교통과 에너지, 안전, 환경 등을 데이터로 연결해 생활 편의를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세종 스마트시티는 설계 단계부터 첨단 기술을 반영해 자율주행과 스마트 모빌리티, 에너지 관리 등을 구현한다는 구상이다. 다음 달에는 2316가구 규모의 첫 주택 공급도 예정돼 있다. 아파트 2191가구와 오피스텔 125실로 구성되며, 자율주행차와 생활 로봇 등도 단계적으로 도입될 계획이다. 2012년 출범한 세종시가 다시 새로운 도시의 미래를 그리는 셈이다. 기존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국가 행정기능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면, 스마트시티는 첨단 기술로 미래의 생활 방식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신생∙스마트도시도 지우지 못한 600년의 시간”
아이러니하게도 이 스마트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수백 년의 세월을 간직한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정확히는 이 나무를 피해 스마트도시가 조성 중이라는 게 맞겠다. 높이만 19~20m에 달하는 천연기념물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다. 나이만 600세가 넘는, 세종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령이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어떤 의미를 지니기에 이리도 시에서 애지중지하는 것일까.
임난수는 1342~1407년에 살았던 고려 말의 무신이다. 공민왕 시절 최영 장군을 따라 탐라 정벌에 참여했으며,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새 왕조에서 벼슬하지 않고 지금의 세종 일대로 내려와 은거한 것으로 전해진다. 1934년 발간된 ‘연기지’에는 임난수가 이곳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간직한 채 남은 생을 보낸 그의 마음이 이 나무에 담겼다. 조선시대에도 그의 충절을 기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연기지에 따르면 세종대왕이 임난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우도록 명했다.
현재 은행나무 뒤편에는 그를 기리는 사당 ‘숭모각’이 자리한다. 행복도시 건설로 주변 마을의 주택은 철거됐지만 은행나무와 사당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2년 5월에는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을 정도다.
“세종 역사는 10여년에 불과하지 않나?”
이처럼 흔히 세종을 두고 역사가 짧은 도시라고 한다. 정부부처를 이전하기 위해 논밭과 마을을 정비하고, 그 위에 청사와 아파트, 도로를 새로 놓아 만든 계획도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가 새롭다고 그 땅의 역사까지 새것은 아니다. 세종이란 이름을 쓰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는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왔고, 임난수 은행나무는 그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해왔다. 이 나무에는 고려를 기억하려는 충신부터 이를 기린 세종대왕의 마음이 수백 년째 깃들어 있다.
서울에서 공공기관에 다니는 이모(43)씨는 업무차 세종을 오가며 느꼈던 인상이 달라졌다고 했다. 이씨는 “매번 보는 곳이 청사 인근이다 보니 회색 건물만 겹겹이 놓여 있어 자칫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지인 소개로 주말에 임난수 사당을 다녀왔는데 세종 인근에 이런 고즈넉한 곳이자 나무가 잘 드리운 곳이 있는지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5살 아들을 데려온 30대 부부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세종에서 쭉 살다 보니 아이에겐 세종이 고향인데, 고향에 대해 그동안 소개해 줄 것들이 별로 없어 아쉬웠다”며 “지난 25일 체험행사가 있어 방문했다가 임난수 전설과 나무에 대해 알게 됐다. 아이에게 지역 역사를 설명해 줄 요소를 알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 가을 세종을 찾는다면, 반듯하고 번화한 세종 행복도시 말고 외곽에 수백 년째 자리한 임난수 은행나무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100투더세종…18편/투 비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