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태극마크는 거래 대상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팀을 꼽으라면 단연 축구 국가대표팀, 이른바 ‘FC대한민국’일 것이다. 잘할 땐 찬사도 엄청나지만, 반대로 경기력이 별로거나 부정적 이슈가 불거지면 비난의 강도도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대표팀을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이 싸늘하다. 이달 초 끝난 9~10월 A매치 4연전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력 관련 이슈가 아니다. 대표팀 선수들 간의 불화설과 리더십 논란이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걸 넘어서서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다. 지난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은 2018년부터 8년간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는 손흥민(LAFC)을 일부 선수들이 ‘7번 선수’라고 부른다는 것을 제기했다. 축구계에서 ‘카더라’식으로 돌던 ‘손흥민 7번 선수설’이 국정감사에서까지 다룰 주제인가 싶지만, 어쨌든 국정감사라는 공론장에서 다뤄지면서 팬들의 공분은 더욱 커진 상태다.

남정훈 문화체육부 기자

이 논란의 시작은 지난 6일 용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 이후 불거진 ‘96라인의 은퇴 소동’이었다. 대표팀의 중추를 이루는 1996년생 동갑내기인 김민재(바이에른 뮌헨)·황인범(포르투)·황희찬(샬케)의 국가대표 동반은퇴설 보도가 흘러나왔다. 이들은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현영민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과 면담을 이어갔다. 면담을 마치고 라커룸에서 나온 황인범에게 대표팀 은퇴설을 묻자 “아니요. 아니요”라고 짧게 답해 은퇴설은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김민재와 황인범은 지난 2일 베네수엘라전을 마치고도 돌발행동에 가까운 언행을 보였다. 후반전에 교체된 김민재는 카메라가 찍는 것을 알면서도 축구화를 집어던졌고, 경기 뒤 방송 인터뷰에서도 “특정 개인이 빛나기보다는 팀이 하나가 돼 뛰어야 한다. 모든 선수가 머리를 처박고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황인범도 “몸도 마음도 힘들다. 도와줄 분이 안 계신다. 회장님도 안 계시고, 감독님도 임시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며 갑작스레 대한축구협회장 공석과 모레노 감독의 ‘임시’ 신분을 문제삼았다.

 

이쯤 되면 ‘96라인’ 3인방에게 묻고 싶다. 원하는 것이 임시가 아닌 정식 감독 체제인가, 아니면 손흥민의 주장 체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대표팀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관계자나 소식통의 전언을 통해 추측이 번지도록 두지 말고, 당사자들이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한다.

 

선수들이 대표팀 운영에 의견을 내고 문제점을 지적할 수는 있다. 다만 대표팀 은퇴를 요구 관철의 카드로 삼아서는 안 된다. 면담 내용이 확인되지 않은 만큼 실제로 그런 요구가 있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특정 요구의 수용 여부에 대표팀 잔류를 걸었다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태극마크가 흥정을 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표팀 내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면 내부 논의로 풀거나, 공론화를 통해 구체적인 문제와 개선 방향을 밝히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다. 당사자들의 설명이 없는 사이 추측은 커지고, 팬들마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두고 ‘92라인’과 ‘96라인’ 지지층으로 갈라져 다투는 상황이다. 축구 팬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대표팀 내 불화설 같은 자극적인 이슈가 아니다. 그냥 축구를 열심히, 잘하는 것을 보며 기뻐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