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7월 노태우정부의 김동영 정무1장관이 사표를 냈다. 암 치료 때문에 더는 공직 수행이 어려웠다. 후임 장관에는 최형우가 기용됐다. 둘 다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 김영삼(YS) 대표의 상도동계 핵심 측근이었다. YS의 왼팔이 김동영, 오른팔은 최형우라는 뜻의 ‘좌(左)동영 우(右)형우’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다. 김동영은 YS의 대통령 취임을 못 본 채 54세 이른 나이에 타계했다. 훗날 YS는 유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일생을 바친 민주화가 꽃피는 것을 보지 못하고 먼저 간 것이 안타깝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김동영과 달리 최형우는 YS정부에서 민자당 사무총장, 내무부 장관 등 요직을 지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1997년 대선이 다가오며 민주계(옛 민주당)와 민정계(옛 민정당) 간 계파 갈등이 극심해졌다. 앞으로 갈 길이 먼데 민주계 내부에선 YS 차남 김현철의 한보 비자금 연루 의혹 등 악재가 연거푸 터졌다. 그러는 사이 YS가 영입한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민자당 안에서 세력을 넓혀 갔다. 민주계에 의한 정권 재창출을 노린 최형우의 속은 타들어 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