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약국’ 우후죽순… 약사법 준수는 뒷전 [밀착취재]

명동 쇼핑거리 일대 약국만 47곳
외국인 몰리며 2년여 새 3.6배 ↑

면허증 게시 의무에도 위반 다수
화장품 집중에 약 구매 못하기도
“약사에게 피부 고민을 직접 이야기하고 제품을 구매할 수 있어 좋아요.”

 

최근 서울 명동 쇼핑 거리에서 만난 일본인 유키는 인근 약국에서 피부 관리용 크림을 샀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 약국 뷰티 제품이 일본에서 인기가 많다”고 했다. 유키가 제품을 샀다는 약국에서는 관광객 여럿이 피부 진단 기계 앞에 앉아 흰 가운 차림의 약사에게 피부 상태를 점검받고 있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명동의 주요 쇼핑거리에 약국 간판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화장품 매장이 있던 자리에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뷰티 약국’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거리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명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박재욱씨는 “중국과 일본 관광객이 가장 많지만 서양권에서도 많이 찾아온다. 피부관리 제품을 주로 판매하고, 약국에서만 살 수 있는 화장품을 찾는 손님이 많다”며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자신의 피부 고민에 대해 약사의 전문적인 상담을 받고 싶어 하는 관광객도 많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이 몰려드는 이 약국은 원래 화장품 가게 자리였다. 2010년대만 해도 화장품 매장 간판이 즐비했던 명동 쇼핑 거리가 최근 ‘약국 거리’로 탈바꿈했다. 실제 3년이 채 안 돼 명동 일대 약국은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약국 영업이 늘면서 약사법 위반 의심 사례도 적잖이 확인됐다.

26일 서울열린데이터광장에 공개된 중구 약국 인허가 정보를 분석한 결과 명동 주요 쇼핑 거리 일대 약국은 2024년 초 13곳에서 이달 중순 47곳으로 3.6배까지 늘었다. 2024년에는 2곳, 지난해에는 9곳이 순증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23곳이나 늘었다. 현재 영업 중인 약국의 절반 이상이 올해 신규 인허가를 받은 곳이다.

간판을 바꿔 단 곳은 대부분 명동을 대표하던 화장품 가게였다.



과거 화장품 브랜드 로드숍(단독 매장)이 차지하던 자리에 약국이 들어섰다. 상당수가 K뷰티 열풍을 타고 외국인 관광객 수요를 노린 곳들이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외국인 의료 소비 건수 가운데 약국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4년 50.80%에서 지난해 58.62%, 올해 1∼9월 68.97%로 높아졌다.

문제는 약국이 빠르게 늘어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면허증 게시 의무조차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취재진이 방문한 약국 10곳 중 4곳에서는 근무 중인 약사나 한약사의 면허증이 제대로 게시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예 면허증이 보이지 않는 곳이 있는가 하면, 실제 근무하는 약사와 다른 약사의 면허증만 걸어둔 곳도 있었다.

약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약국 개설자뿐 아니라 약국에 종사하는 약사와 한약사도 자신의 면허증 원본을 약국 안의 보기 쉬운 곳에 게시해야 한다. 중구보건소 관계자는 “근무 중인 약사도 면허증을 게시하는 것이 의무”라며 “게시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 시정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약업계 내부에서도 ‘화장품 중심 약국’의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명동에서 20년간 약국을 운영해 온 50대 약사는 “새로 생긴 약국 중에는 화장품 판매에 집중하다 보니 손님들이 감기약도 찾지 못해 이 약국으로 다시 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국가가 면허를 부여한 것은 국민 건강을 책임지라는 뜻인데, 그 전문성을 화장품 판매에만 이용한다면 결국 소비자와 약사 사이의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