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망보험금 ‘나눠 주는’ 신탁 조건은?

도입 2년 만에 생보 3사 계약액 1조원 넘은 ‘사망보험금 청구권 신탁’
가입은 주계약 일반사망보험금 3000만원 이상, 수익자는 배우자·직계존비속만
게티이미지뱅크

남편이 남긴 사망보험금 3억원을 아내가 한꺼번에 받지 않고 매달 250만원씩 생활비로 받도록 미리 정해 둘 수 있다.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면 남은 돈은 자녀들에게 가도록 할 수도 있다. 가입자가 살아 있을 때 보험금을 누구에게, 언제, 얼마씩 줄지 정해 두는 ‘사망보험금 청구권 신탁’을 통해서다.

 

27일 생명보험협회와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사망보험금 청구권 신탁은 보험금에 대한 권리를 신탁회사에 맡기고, 가입자가 사망한 뒤 가족(수익자)이 보험금을 어떻게, 얼마씩, 언제 받을지 미리 정해 두는 제도다. 앞의 사례는 보험업계가 고령의 아내를 둔 70대 가입자를 예로 들어 소개한 설계다.

 

운용수익과 수수료를 따지지 않고 단순 계산하면 3억원은 매달 250만원씩 10년(120개월)을 나눠 받을 수 있는 규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령의 배우자가 갑자기 큰 자금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고 생활비 걱정 없이 평온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며 “가족 간 분쟁을 줄일 수 있는 것도 큰 이점”이라고 설명했다.

 

◆ 목돈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생기는 걱정

 

사망보험금이 한 번에 큰 금액으로 지급되면 그 돈을 어떻게 쓸지 미리 계획하지 않은 경우 예상보다 빨리 소진되거나 가족 간 분쟁, 사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자녀가 미성년자이거나 재산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걱정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제도의 길은 2024년 11월12일 시행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열렸다. 금융위원회는 당시 미국·일본 등에서는 보험금을 포함한 재산 상속에 신탁이 쓰이지만 국내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 은행·보험사·증권사 같은 신탁업자가 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금융위는 법무부와 협의해 신탁이 가능한 보험금청구권의 요건을 시행령에 정했다. 기대 효과로는 재산 관리 경험이나 능력이 부족한 미성년자·장애인 유가족의 복지 향상을 꼽았다.

 

◆ 내 보험도 맡길 수 있을까…조건은 네 가지

 

대상은 주계약 일반사망보험금이 3000만원 이상인 보험이다. 재해사망·질병사망 같은 특약 보험금은 신탁할 수 없다. 금융위는 이런 사망은 발생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 신탁계약자(위탁자)가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 보험금을 받을 수익자도 직계존비속과 배우자로 제한된다.

 

또 신탁계약을 맺을 때 보험계약대출이 없어야 한다. 신탁 기간 중 대출을 받거나 보험료를 내지 않거나 보험계약을 해지하면 신탁은 무효가 된다.

 

계약을 맺으면 보험의 수익자를 신탁회사로 바꾸고, 가입자가 사망하면 신탁회사가 보험금을 대신 받아 정해 둔 가족에게 나눠 준다. 금융위는 신탁계약에 보험계약자의 보험수익자 지정·변경권이 보장된다는 점을 명시하도록 했다. 상법이 보장하는 계약자의 권리를 신탁 뒤에도 지키기 위해서다.

 

◆ 생활비는 매달, 입학·결혼 땐 목돈

 

지급 방식은 매달 생활비, 교육비, 입학·결혼·취업 같은 중요한 시점의 일시금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미성년 자녀의 안정적인 성장은 물론 장애 자녀의 미래 설계, 고령 배우자의 생활비 보장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보험업계가 든 다른 예는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40대가 사망보험금 6억원을 신탁하는 경우다.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달 각각 300만원을 받고, 대학에 들어갈 때 각각 1억원, 나머지는 졸업 뒤 받도록 짤 수 있다.

 

나눠 지급되는 동안 남은 돈은 그대로 묶여 있지 않는다. 한화생명은 분할 지급 기간 남은 보험금이 정기예금 등으로 운용돼 최종 지급액에 이자가 더해진다고 설명했다.

 

◆ 도입 2년 만에 계약액 1조원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교보·한화생명 3사의 보험금 청구권 신탁 유효계약액은 지난 8월 말 누적 1조140억원으로 집계됐다. 제도가 시작된 2024년 1416억원, 지난해 4598억원이 계약됐고 올해도 8월까지 4126억원이 더해졌다. 올해 8개월 만에 지난해 한 해 계약액의 90%에 가까워진 셈이다.

 

상품은 삼성·흥국생명이 먼저 내놨고 교보·미래에셋생명이 뒤따랐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9월 판매를 시작했다. 은행 가운데서는 KB국민은행도 같은 신탁을 취급한다.

 

◆ 수수료 붙고 상속세도 그대로

 

디민 신탁회사가 자산의 운용·관리를 맡는 과정에서 수수료가 붙는다. 수탁 금액과 운용 상품 등에 따라 달라진다. KB국민은행의 경우 계약 때 사망보험금의 0.3%를 기본보수로, 가입자가 사망한 뒤 보험금을 받을 때 0.5%를 집행보수로 받는다. 남은 신탁 원본에는 평균잔액의 연 0.2%가 신탁보수로 붙는다. 사망보험금 3억원이면 기본보수 90만원, 집행보수 150만원이다.

 

신탁 재산은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고, 운용하는 자산에 따라 원금 손실이 날 수도 있다.

 

상속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신탁으로 넘어간 보험금도 상속재산가액에 포함돼 상속세가 부과될 수 있다. 민법이 보장하는 법정상속인의 유류분도 침해할 수 없어, 신탁 내용에 따라 유류분 반환 청구가 생길 수 있다.

 

한편 보험업계는 신탁 대상을 치매보험금 등으로 넓혀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금 제도는 가입자가 사망한 뒤에야 작동해, 치매 등으로 판단 능력이 떨어진 가입자 본인의 생전 자산 관리에는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