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그들만의 상식’이 공직을 무너뜨린다

특혜를 관행·능력으로 믿는 엘리트 습성 만연
인사 검증 강화하고 임명 뒤 책임도 물어야

공직과 사익의 경계는 왜 이토록 자주 흐려지는가. 유홍준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셀프 출품’ 논란과 사퇴도 그 연장선에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애국지사의 유묵으로 전시한 글씨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작품은 유 전 관장이 2019년 경매에서 5만원에 산 개인 소장품이었다. 그는 별도 감정 없이 서예사 전공자로서 확신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감정 실수만이 아니다. 자신의 소장품을 자신이 책임지는 국가기관에 출품했다면 이해충돌 여부부터 따졌어야 했다. 개인의 확신이 박물관의 검증을 대신한 순간, 조직의 안전장치도 멈췄다.

김호균 공공리더십 연구자 전남대 명예교수

올해 1월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는 결혼한 장남을 부양가족으로 포함해 청약 가점을 높였다는 의혹 등이 잇따르자 지명이 철회됐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의원 시절 한 사업가의 요청을 받고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신약 임상시험 민원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다가 9월19일 자진 사퇴했다. 식약처는 심사 특혜가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어디까지가 공익적 민원 전달이고 어디서부터가 사적 영향력 행사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사건의 내용과 책임은 다르다. 하지만 같은 정부의 고위직 인사에서 비슷한 성격의 논란이 반복됐다면 개인의 일탈로만 넘길 수 없다. 세 사건은 같은 질문을 남긴다. 왜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국민에게 특혜나 권한 남용으로 비칠 가능성을 미리 살피지 못했을까.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특정 환경에서 오래 지내며 몸에 밴 생각과 행동 습관이다. 이런 습관은 한 집단 안에서 별다른 의심 없이 통하는 ‘그들만의 상식’을 만든다. 정치권과 관료사회, 학계와 전문직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가족에게 유리한 기회를 연결하는 일은 능력으로, 사업가의 민원을 정부 기관장에게 전하는 일은 의정활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전문가가 자기 판단을 조직의 검증보다 앞세우는 일은 자신감으로 포장된다. 국민에게는 특혜와 이해충돌로 보이는 행동이 그들 사이에서는 관행과 능력으로 통한다.

유홍준 사태도 이 지점에서 봐야 한다. 최고 전문가라는 권위가 스스로를 의심하지 못하게 했다면 전문성은 검증을 돕는 자산이 아니라 검증을 막는 벽이 된다.

이런 습성이 공직에 스며들어 국민이 맡긴 권한과 국가기관의 권위를 자신과 가족, 지인에게 유리한 자원처럼 다루게 되는 것이 공직의 사유화다. 금전적 이익이 없어도 개인의 판단을 국가기관의 판단으로 만들거나 공적 지위로 가까운 사람에게 특별한 통로를 열어주면 공과 사가 뒤섞인다.

고위공직자에 흠결 없는 삶을 요구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흠결이 맡을 직책의 핵심 가치와 충돌하는지다. 인사 검증도 재산과 병역, 세금과 전과 확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익과 사익이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했는지, 이해관계가 있는 일에서 물러났는지, 내부의 반론을 허용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지명·상원 인준 대상자가 재산공개서를 내면 연방정부윤리청과 임명 예정 기관이 잠재적 이해충돌을 함께 심사한다. 문제가 확인되면 후보자는 직무 회피나 관련 자산 처분 등 해소 방안을 서면으로 약정해야 한다. 흠결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이해충돌을 어떻게 풀 것인지까지 임명 전에 묻는 것이다.

세 사람 모두 물러났으니 견제가 작동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퇴와 지명 철회는 사후 수습이다. 문제를 찾지 못했다면 검증의 실패다. 위험을 알고도 감수했다면 인사권자의 책임이다. 필자가 지난 9월, 이 지면에서 썼듯 검증은 위험을 식별할 뿐 이를 감수할지 결정하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소장품과 전시품의 관리·검증 절차 전반을 감사하겠다고 했다. 감사가 개인의 실수를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임명 뒤 생긴 문제라면 이해충돌을 막지 못한 조직과 감독 체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직은 개인의 성공을 완성하는 훈장이 아니다. 국민이 잠시 맡기는 권한이다. 공직자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과 인맥, 명예와 권력이 공적 판단을 흐리지 않도록 절제하는 능력이다.

특권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누리는 사람이 그것을 특권이라고 느끼지 못할 때다. ‘그들만의 상식’이 국민의 상식과 멀어지는 순간, 공직에 대한 신뢰도 무너진다.

 

김호균 공공리더십 연구자 전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