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의감성엽서] 이야기의 힘

만약에 로봇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그래서 어떤 로봇이든 하나를 꼭 선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로줌 유닛 7134’를 선택하고 싶다. ‘로즈’라 불리는 이 로봇은 어느 폭풍우 치던 날, 다른 수백 개의 로봇과 함께 탄 화물선이 침몰하는 바람에 동물들만 사는 야생 섬으로 떠밀려 와 혼자 살아남은 로봇이다.

 

그곳에서 눈을 뜬 로즈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하여 만나는 동물들에게 말을 붙여보지만, 모두가 괴물이라며 도망가기 바쁘다. 인간을 돕기 위해 프로그래밍 된 로봇이지만 이곳에는 인간이란 단 한 명도 없고, 모두가 동물들뿐이고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어딜 봐도 로즈가 살 만한 곳은 아니다.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로즈는 전혀 자신을 낯설게 느끼지도 않고 인간 대신 동물들을 돕기로 결심, 단시간에 동물 언어를 습득한다. 그러곤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 프로그래밍이 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려 고군분투한다. 그 와중에 잘못하여 기러기 가족을 죽게 만들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러기알을 살펴보다 여우 핑크에게 빼앗기고 만다. 만약 이때 기러기알을 되찾기 위한 로즈의 끈질긴 여우 추격전이 없었다면 그 기러기알은 여우 뱃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알을 되찾은 로즈의 손바닥에서 태어나는 아기기러기, 브라이트빌. 정말 사랑스럽고 앙증맞다. 대부분의 동물이 태어날 때 처음 만난 얼굴을 ‘엄마’라고 생각하듯이 로즈는 졸지에 브라이트빌의 엄마가 된다. 너무너무 난감하지만 로즈는 여우 핑크의 도움을 받아 ‘엄마 되기’에 돌입한다. 로즈가 이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배움밖에 없다. 배움이 곧 로즈의 인생이다. 로즈는 그렇게 스스로 하나하나 관찰해 알아내고 느끼고 이해하고 배우면서, 무수한 좌충우돌, 시행착오, 우왕좌왕, 동분서주, 종횡무진을 거치면서도 브라이트빌에 대한 사랑과 주변 동물들에 대한 진심 어린 친절함을 결코 잃지 않는다. 친절함이 인생에 있어 최고의 스킬이라는 걸 알고 있기나 하듯이.

 

그러나 로즈는 허구의 인물이며, 피터 브라운의 소설 ‘와일드 로봇’의 주인공이며, 그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크리스 샌더스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이다. 그리고 둘 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단순하다면 단순한 내용이지만, 나는 로즈가 자연과 주변 동물들을 대하는 감정과 태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앤 카슨이 말하는 말의 힘, 이야기의 힘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하여 나도 모르게 로즈처럼 꽃들이 태양을 따라 천천히 고개 돌리는 것을 지켜보게 되고, 솔향이 배어 있는 촉촉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게 되고, 새들이 언제 노래하고, 왜 노래하는지 귀 기울이게 되고, 수많은 동물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그 생존 기술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써야겠다는 열망이 생겨났다. 그래, 글을 쓰자. 앤 카슨의 시구처럼 나도 이야기의 힘, 말의 힘으로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어 하얀/ 흰자를 막자.” 지루함 없이, 결코 지루하지 않게.

 

김상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