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휴대전화 교체 내역’을 조회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가 통신사에 요구해 제출받은 자료에는 조 대법원장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까지 노출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자료 제출을 요구한 의원실은 “법률상 적법 절차에 따라 통신사에서 제출받은 내역”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개인정보를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국회 의결만으로 당사자도 모르게 받아보는 것”이라면서 국회가 권한을 남용해 헌법상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이 이날 “조 대법원장에 대해 제기된 각종 의혹들의 진상을 규명할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히면서 향후 실시될 국조에서도 자료 제출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다음 달 5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실시계획서를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관련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다.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에 따르면 과기정통위 위원들은 22일 전체회의에서 SKT가 회신한 조 대법원장의 휴대전화 기기 교체 내역 서면 자료를 열람했다.
휴대폰 교체 내역 유무와 시점, 기종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조 대법원장이 최근 휴대전화 기기를 교체한 내역이 없다는 답변이었다. 제출된 자료에는 조 대법원장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까지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 대법원장의 휴대전화 관련 내역 자료 제출을 요구한 민주당 황정아 의원실 측은 “헌법이 부여한 국정 감사 권한과 국회증언감정법 등에 따른 상임위 의결자료로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라며 “통화내역 등 내밀한 사적 사안은 요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과방위 감사 대상도 아닌 대법원장의 휴대전화 관련 개인정보를 요구한 이유에 대해선 “이미 전례가 있다”며 “(이를 통해) 지귀연 판사 등에 대한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한 바도 있다”고 답했다.
국회법 128조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와 직접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 등의 제출은 위원회 의결을 통해 정부, 행정기관 등에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한 국회증언감정법(증감법) 제2조는 해당 요구를 받은 기관이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법률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따르도록 했다.
그러나 국회가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휴대전화 관련 정보를 제한 없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료 요구가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법제처 역시 국회의 자료 제출 권한에 대해 “헌법상 기본권 보호와 개인정보 보호법의 취지 등에 따른 한계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국감법 8조 또한 “감사 또는 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돼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사찰이나 다름없다”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특히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통신이나 금융 관련 내역을 조회할 때는 관련 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이 사실을 사후 통보해야 하지만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는 이러한 절차 규정조차 없다는 지적이다.
판사들 사이에서조차 “영장도 없이 개인의 휴대전화 기기 교체 내역을 당사자도 모르게 들여다보는 게 가능하겠느냐”며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선의 한 부장판사는 “국회는 수사기관이 아니다”면서 “이런 기본권 침해를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라고 영장주의가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인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도 “사실상 압수수색에 가까운 행위”라며 “대법원장 휴대전화 교체 내역을 요구한 목적도 잘 모르겠고, 그렇게 받은 자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번호가 노출되도록 한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대법원장을 잠재적 증거인멸 피의자로 몰아가려 한 시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선의 한 중견 법관은 “대법원장에 대한 음모론을 만들기 위해 해당 자료를 요구한 것 아니겠느냐”면서 “국회가 요구한다는 이유로 영장도 없이 가입자의 개인 통신정보를 제출하는 통신사 역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SKT 측은 “증감법 2조 등에 따른 것”이라며 “민감한 개인정보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에 제출한 자료는 민감한 개인정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취지다. 조 대법원장 휴대전화번호 유출과 관련해선 “전화번호는 제외해 달라는 당초 의원실 요청에 따라 ‘마스킹’ 처리했다”면서 “이후 번호 노출 경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