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 사라진 자리로 가을 햇살이 쏟아졌다. 검게 탄 기둥과 주저앉은 철판 사이에는 생활용품이 뒤엉켜 있었다. 화재 다음 날인 28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불이 훑고 간 자리는 집과 골목의 경계마저 알아보기 어려웠다.
불에 탄 차량 두 대가 잔해 사이에 남았다. 유리창은 사라졌고 차체는 빛을 잃었다. 휘어진 철골은 엇갈린 채 허공을 가로질렀다. 무너진 벽체와 검게 그을린 가재도구가 한데 쌓여, 그곳이 누군가의 생활공간이었음을 보여줬다.
파란 외투를 입은 한 사람이 잔해 앞에 서서 화재 현장을 바라봤다. 다른 골목에서는 모자를 쓴 사람이 불탄 집터를 향해 걸었다. 등 뒤로 길게 드리운 그림자가 검게 변한 골목 위에 겹쳤다.
소방대원들은 잔해 사이로 호스를 끌어와 물을 뿌렸다. 무너진 구조물 너머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이어졌다. 마을 한쪽에는 ‘구룡마을 미니소방서’라고 적힌 소화기 보관함이 서 있었다. 그 뒤로 불에 무너진 집들이 펼쳐졌다.
전날 오후 3시 50분쯤 구룡마을 2지구에서 시작된 불은 바람을 타고 인근 지구로 번졌다. 소방당국은 밤샘 진화 끝에 이날 오전 4시 39분쯤 화재를 완전히 진압했다. 불이 난 지 약 13시간 만이다. 이번 화재로 30대 여성 1명이 경상을 입었다.
강남구에 따르면 1·2·3지구에서 77가구 107명이 피해를 봤다. 구는 학교 체육관과 인근 숙소 등에 대피 공간을 마련했다.
마을 뒤편 산에는 가을빛이 남아 있었다. 그 아래 집터에는 타다 남은 기둥과 구겨진 철판이 햇빛을 받았다. 불길은 잡혔지만, 삶의 자리를 되찾아야 하는 이들의 시간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