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의 청년이 두 달 남짓 다닌 직장을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생활을 가장 힘들어했다. 나는 조금만 더 다녀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랬더니 청년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렇게 되물었다. “왜 힘든 걸 억지로 참고 계속해야 하나요?”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고통을 참을 필요는 없다. 모욕과 부당한 대우를 견디는 것이 인내는 아니다. 집에서 쉬어도 체력이 회복되지 않고 건강이 나빠진다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출 수도 있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솔직히 말하면 나도 아침 출근이 힘들다. 체질적으로 잠에서 깬 뒤 정신이 또렷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눈은 떴지만 머리는 잠 속에 있는 듯한 아침이 자주 있다. 날씨가 몹시 덥거나 추운 아침이면 ‘집에서 음악 듣고 책이나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한다. 시간 운용의 자율성이 높은 직업을 가진 이들이 나는 부럽다. 하지만 진료실에는 나와 만나기로 약속한 환자가 있다. 힘들다고 그 약속을 마음대로 깰 수는 없다. 아침마다 커피로 정신을 깨우며 집을 나섰다. 그렇게 산 세월이 어느새 30년이 돼 간다. 여전히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하지는 못해도 일은 내 정체성의 한 부분이 되었다.
사람에게는 자신을 제자리에 붙들어 주는 압정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에는 학교가 그 역할을 한다. 정해진 시간에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게 바로 그 압정이다. 사회로 나오면 새로운 압정이 필요하다. 출근해야 할 직장, 맡겨진 일, 지켜야 할 약속 같은 것들이다. 압정은 따갑고 우리를 구속한다. 하지만 동시에, 바람이 불면 종이처럼 쉽게 흩어져 버리지 않도록 우리의 일상을 단단히 붙들어 준다.
며칠 일해봤는데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느끼는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다. 처음 시작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고역이다. 의지가 없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아직 충분히 반복하지 않아 몸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새로운 행동이 습관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널리 알려진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에 따라 짧게는 18일, 길게는 254일이 필요했다. 평균 66일이 걸린다고 한다.
아침마다 “오늘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라고 고민해야 한다면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기운이 빠질 것이다. 힘들면 쉬고 기운 넘칠 때만 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편할 것 같아 보여도 자기 기분에 따라 들쭉날쭉 살다 보면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혼란이 어느 순간 찾아온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워도 반복이 태도와 자세를 만든다. 정해진 시간에 기상해서 씻고, 옷을 차려입고, 현관문을 나서는 행동을 되풀이하면 힘겹게 결심하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그렇게 움직인다. 싫어도 한 번 더 해보고, 흐트러졌더라도 주어진 일로 되돌아오면 몸이 해야 할 일을 기억하게 된다. 억지로 한다는 마음도 점점 옅어진다.
무조건 참고 버티라는 뜻이 아니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고통이 정말로 자신을 해치고 있다는 경고인지,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어야만 하는 자연스러운 불편인지를 구분하려면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잘못된 자리에 박힌 압정이라면 뽑는 것이 맞다. 하지만 단지 따갑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뽑아버리면 하루하루를 붙들어 줄 것마저 없어져 버린다. 일상이 무너지면 삶도 정체성도 단단하게 구축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