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사람을 가두는 결정, 왜 가족에게 맡기나

정신질환자의 非자발적 입원
보호자에게 결정 요구하는 건
가족관계 파괴 초래할 수 있어
국가책임 더 이상 미뤄선 안 돼

지난 13일 인천 남동구의 한 상업시설에서 59세 남성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흉기를 휘둘러 8명이 다쳤다. 그는 2015년 두 차례 살인미수 혐의로 복역한 뒤 출소해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었고, 30여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정신질환자 관리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하면서, 중증 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강제 입원) 여부를 법원이 심사·결정하는 사법입원제 논의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되는 논의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입원 결정의 실질적 부담이 여전히 가족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입원을 추진했지만, 환자에게는 자신을 강제로 가둔 사람으로 기억되기 쉽다. 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을 둘러싼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보호자는 치료를 거부하는 가족을 지켜보며 증상의 악화와 사고 위험에 대한 불안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입원을 추진하는 순간 배신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퇴원 후에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족에게 입원 동의서는 단순한 행정서류가 아니다. 국가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길 때, 치료의 출발점은 관계 파괴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

그동안 국가는 그 결정의 무게를 가족에게 맡겨 왔다. 2019년 진주 안인득 방화·살인 사건은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참극이 벌어지기 전 가족은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지만, 당사자가 치료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공적 체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5명이 목숨을 잃고 17명이 다쳤다. 그 뒤 법원은 국가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위험을 알렸고 구조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사건이 발생하면 화살은 늘 가족에게 돌아간다. 왜 관리하지 못했느냐는 비난이다. 제도는 가족에게 입원을 결정하라고 요구하면서, 사고가 발생하면 다시 가족에게 책임을 묻는다. 책임은 떠넘기고 권한은 제한하는 구조다.

물론 범죄 발생을 이유로 정신질환 전체를 위험의 상징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당시에도 범행보다 정신질환 여부가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이를 곧바로 조현병 문제로 일반화하려 했다. 그러나 특정 개인의 범죄를 질환 전체의 위험성으로 확장하는 순간, 치료 제도는 지원이 아니라 감시의 장치로 변질된다.

입원은 공포가 아니라 환자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법입원 논의가 나온다. 치료의 필요성은 의료진이 판단하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정은 독립된 사법절차가 맡자는 것이다. 핵심은 더 쉽게 입원시키자는 데 있지 않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결정을 가족 혼자 떠안지 않게 하자는 데 있다. 지금의 제도는 보호자는 치료의 협력자이면서 동시에 강제 입원의 집행자가 되는 이상한 구조이다. 퇴원 후에는 다시 같은 공간에서 환자와 살아야 한다. 치료를 위해 내린 결정이 관계를 파괴하는 씨앗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법입원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병원에 보내는 절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원 밖에서 살아갈 조건이다. 방문 치료와 위기 대응팀, 지원 주거와 단기 쉼터, 가족 상담과 지역사회 지원체계가 없다면 입원 결정권자가 누구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병원 문만 만들고 퇴원 후의 삶은 방치하는 정책은 개혁이 아니다.

정신질환 정책의 목표는 가두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을 더 이상 가족에게 미루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환자의 인권과 가족의 안전 중 하나가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공공이 개입하고, 자유를 제한할 때는 엄격하게 심사하며, 퇴원 후에는 지역사회가 삶을 떠받치는 체계다.

사법입원은 그 출발점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을 지금까지 가족이 대신 지고 있었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