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한 전 주칠레 공사참사관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참여와 남미공동시장(MERCOSUR·메르코수르)과의 무역협정 추진에 따른 우려를 보호 장치와 피해 보전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축수산업 등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분야는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글로벌 사우스와의 무역확대를 강조했다.
멕시코 멕시코자치공과대학원(ITAM)에서 개발경제학을 전공하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에콰도르 무역관장을 거쳐 지난해 말까지 칠레에서 공사참사관 겸 총영사로 근무한 그를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황 전 공사참사관은 CPTPP, 메르코수르 협정을 둘러싼 논란의 해법을 협정 설계, 지원 대책에서 찾았다. 쇠고기 등 민감품목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관세 철폐 기간을 늘리는 방식을 주장했다. 낮은 관세가 적용되는 물량을 제한하는 관세할당과 수입 급증 시 관세를 다시 올리는 세이프가드도 제시했다.
그는 “피해 보전과 경쟁력 강화 대책을 협상 전에 미리 확정해서 농업계와 충분히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료용 곡물의 주요 공급원인 메르코수르와의 협정도 잘 설계하면 국내 축산농가의 사료비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메르코수르 협상에서는 공산품 관세 인하와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 경쟁국과 동등한 조건 마련을 과제로 꼽으며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주요국에 대한 시장 접근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브라질 국빈 방문 당시 한·메르코수르 무역협정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CPTPP에서는 회원국 부품을 활용해도 특혜관세를 받을 수 있는 ‘원산지 누적’에 주목했다. 베트남·멕시코에 공장을 둔 한국 기업이 회원국인 일본·호주·캐나다산 부품을 써도 협정 요건을 충족하면 회원국 수출 때 낮은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칠레의 CPTPP 경험에서 제일 먼저 짚고 싶은 건, 관세인하 효과 외에도 규범과 원산지 누적이 핵심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칠레는 대부분의 회원국과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추가 관세 혜택은 작았지만 원산지 누적과 디지털·서비스 분야의 새로운 규범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내부적인 합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칠레는 투자자·국가 분쟁과 노동·환경·원주민 권리 등을 둘러싼 논쟁을 거치며 비준에 4년이 걸렸다. 황 전 공사참사관은 “우리도 농축수산업 종사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협상과 함께 진행해야 한다”며 “국내 합의와 기업의 협정 활용 준비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칠레가 주는 교훈”이라고 말했다.
외교 지평 확대도 강조했다. 주변 4강과 남북관계라는 조건 속에서 한국의 협상력과 선택지를 넓히려면 협력 기반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핵심광물과 에너지·식량, 산업·소비시장 측면에서 가치가 큰 중남미가 중요하다.
황 전 공사참사관이 중남미에 천착한 계기는 멕시코에서 겪은 무장강도 사건이었다. 자신을 위협한 청년들에게 더 좋은 교육과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었다면 삶이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고민이 개발경제학 공부로 이어졌다.
그는 “중남미는 치안과 불평등의 과제를 안고 있지만 동시에 문화적 역동성과 자원·산업 잠재력이 큰 지역”이라며 “함께 성장할 파트너”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