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대법원장 습격 사건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1999)은 재미있다. 젊은이들이 보면 부조리로 가득찬 기성세대를 표적 삼은 화끈한 분풀이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법도 하다. 하지만 남의 사유 재산을 빼앗는 등 온갖 불법 행위를 일삼은 이들이 무슨 의인(義人)처럼 묘사된 대목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영화 속이라고는 하나,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이 무시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범죄자 미화 경향은 ‘한국 영화의 고질(痼疾)’이란 지적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시정되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한 국회 국정조사 실시를 결정하고 하루 지난 28일 조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난 한 놈만 패! 너희들이 몇 명이 오든 난 끝까지 한 놈만 조진다!” 주유소 습격 사건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4명 중 일명 ‘무대포’(유오성)가 외친 대사다. 패싸움에 가담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나’는 분명히 동지들을 믿고 뛰어들었는데, 어느 순간 동지들은 죄다 사라지고 홀로 적들에 둘러싸였을 때의 난감함이란! 무대포 같은 깡패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난 한 놈만 패”라는 엄포는 특정인을 집단에서 완전히 분리시킨 다음 폭력이든 회유든 압박을 가해 결국 굴복시키고 마는 비열한 전략이다.

 

요즘 여권 사람들을 보면 다들 눈이 새빨갛게 충혈돼 “난 한 놈만 패”라고 떼창을 부르는 듯하다. 그 대상은 다름아닌 조희대 대법원장이다. 지난 2025년 5월 조 대법원장이 재판장인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민주당 대선 후보 신분의 이재명 대통령 상고심에서 유죄 취지 판결을 선고했다. 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 혐의를 놓고 서울중앙지법 1심(2024년 11월15일)은 유죄, 서울고법 2심(2025년 3월26일)은 무죄를 각각 선고한 가운데 대법원이 사실상 결론을 내린 셈이다. 민주당 지지자들로선 조 대법원장이 무척 미울 것이다.

28일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김민석 대표(왼쪽 두 번째) 등 당 지도부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실시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최민희 최고위원, 김 대표, 한병도 원내대표. 연합뉴스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법관 10명(유죄) 대 2명(무죄)으로 갈렸다.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의 차이가 아주 현격하다. 야구 스코어에 비유해도 10 대 2로 끝난 경기라면 압도적 승리요, 완전한 참패다. 이쯤 되면 뭐가 상식에 부합하고 또 뭐가 상식에서 동떨어졌는지 명명백백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다수의견에 가담한 대법관 9명은 다 빼고 조 대법원장만 공격해 망신을 안기겠다는 민주당의 정략에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낀다. ‘난 한 놈만 패’라는 협박은 조폭들 사이에서나 통할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