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는 일본의 오랜 수도이자 전통문화의 얼굴이다. 고찰과 정원의 아름다움을 찾아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그러나 그곳에는 우리가 마주해야 할 역사가 있다. 히가시야마구 차야마치의 이비총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군이 전공의 증거라며 베어 간 조선인들의 귀와 코가 묻힌 곳이다. 일본 문화의 품격을 감상하던 발걸음은 무덤 앞에서 인간의 야만을 묻게 된다.
지난 28일 이비총 앞에는 술과 과일을 올린 제상이 정성껏 차려졌다.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고 일본 교토지부가 주관한 제19회 겨레얼살리기 이비총 위령제. 궂은 날씨에도 민족종교 지도자와 재일동포, 외교 당국자 등 150여 명이 모였다. 향을 피우고 잔을 올리는 동안, 400여 년 전의 참상이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기억으로 다가왔다.
지난 4월 취임한 정천기 이사장은 초헌을 맡았다. 언론인으로 살아온 그는 기록도 없는 희생자들의 고통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비총을 “영원한 평화와 인간 존엄을 일깨우는 상징”으로 남기겠다는 다짐에는 단체가 걸어갈 방향이 담겨 있었다. 추모의 전통을 이어받은 신임 이사장의 책임감이 든든했다.
갱정유도 김경곤 훈장의 독축에 이어 이영채 주오사카 대한민국 총영사가 아헌을 올렸다. 위령제 때마다 함께하며 힘을 보태는 총영사의 참여는 동포들에게도 큰 격려다. 외교가 국가 사이의 현안을 조율하는 일이라면, 희생자의 넋 앞에 잔을 올리는 일은 관계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놓는 일이다. 한일 우호도 이러한 기억과 예의를 갖출 때 깊이를 얻는다.
김명홍 민단 오사카본부 단장과 장상일 민단 교토본부 단장은 종헌을 맡았고, 윤도심 겨레얼본부 교토지부장은 차를 바쳤다. 정연자 재일본대한민국부인회 교토부 회장도 헌화로 정성을 보탰다. 교토와 오사카지부 동포들이 지켜온 것은 행사의 명맥만이 아니다. 타향에서 겨레의 아픔을 기억하며 이웃 일본인과 함께 살아갈 길을 찾는 마음이다. 그 실천이 한일 화해와 평화를 지탱한다.
혜광 스님의 추모 염불에 이어 청년국악단체 ‘국악LAB 한양팔도’의 진도씻김굿이 펼쳐졌다. 유창선의 장구와 바라지, 윤진우의 대금, 한태연의 아쟁, 한윤경의 지무가 어우러졌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애절함 속에 장엄함이 흘렀다. 말로 못다 한 슬픔을 소리와 몸짓이 받아 안았다. 젊은 예인들이 오래된 의례에 오늘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겨레얼의 계승을 보여줬다.
유교의 제례와 불교의 염불, 전통의 씻김굿이 한자리에서 영령을 위로했다. 형식은 달라도 희생된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같았다. 종교가 고통받는 이의 곁에 서야 한다면, 죽음 뒤에도 제 이름을 되찾지 못한 이들의 넋을 보듬는 일 역시 그 책무일 것이다.
한재우 사무총장에게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는 정성이 느껴졌다. 겨레얼본부를 2003년 설립한 고 한양원 회장의 막내아들이다. 겨레얼본부는 이비총 위령제뿐 아니라 세계 30여 곳에 지부를 두고 현지 동포들이 우리 민족의 정신과 뿌리를 잊지 않도록 힘을 쏟고 있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장을 지낸 한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10년이다. 한 사무총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이비총을 고국으로 모셔오는 데 힘을 쏟았다고 전했다. 목적지는 일본인들의 무덤이 있던 남원이었다. 선조들을 고향 땅으로 모시고 싶었던 간절함이 전해졌다.
그러나 이장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비총은 이미 일본의 국가 사적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어 선조들을 모셔오려던 염원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남는다. 한 사무총장이 들려준 소식은 그 아쉬움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했다. 교토로 수학여행을 온 한국 학생들이 이비총의 존재를 알고 잇따라 찾아와 참배하고 간다는 것이다.
이날도 충남 당진 서야중학교 학생 30명과 논산 연무초등학교 학생 20여 명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교과서에서 읽은 전쟁을 무덤 앞에서 다시 만난 아이들이다. 귀와 코를 전리품으로 삼았다는 사실 앞에서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고, 평화가 왜 소중한지 묻게 될 것이다. 고국으로 옮겨오지 못한 무덤이 오히려 다음 세대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현장이 되고 있었다.
선조를 기리는 길은 유해를 모셔오는 데만 있지 않다. 그들이 겪은 고통을 후손의 기억 속에 되살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마음을 기르는 데도 있다. 아버지가 선조들의 귀향을 염원했다면, 아들은 그 얼을 지키며 후손들이 선조를 찾아오는 길을 잇고 있다. 한 사무총장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는 방식은 그래서 듬직하다.
2007년 시작된 위령제는 내년 봉행 20년과 이비총 조성 430년을 맞는다. 겨레얼본부는 이곳에 중국인 희생자들의 귀와 코도 묻혀 있다며 한중일이 함께하는 위령제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논의 단계지만 뜻깊은 방향이다. 세 나라가 희생자의 존엄을 함께 기리고 전쟁의 책임과 상처를 성찰한다면, 추모의 자리는 동아시아 평화를 배우는 마당으로 넓어질 수 있다.
겨레얼을 살린다는 것은 상처를 잊지 않되 그 기억을 미움으로 물려주지 않는 일이다. 화해 또한 아픈 역사를 덮어두고 얻을 수는 없다. 이비총 앞에서 선조에게 고개를 숙인 아이들이 자라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어른이 될 때, 위령제의 기도는 삶 속에서 응답을 얻을 것이다. 선조들의 유해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 아픔을 기억하는 후손들의 발걸음 속에서 겨레의 얼은 되살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