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먹던 된장찌개에서 갑자기 쇠 맛이 나고 좋아하던 고기가 싫어졌다면 신장 기능 저하가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맛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신장질환을 의심하기는 어렵다. 감기나 약물, 치과 질환도 같은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영국 신장 환자 지원단체 키드니케어UK 안내 자료에서 버밍엄 퀸엘리자베스병원 신장내과 전문의 그레이엄 립킨 박사(키드니케어UK 이사회 의장)는 신장질환자 약 3명 중 1명이 미각 변화를 겪는다고 설명했다. 투석 중이거나 병이 많이 진행된 환자에게 더 흔하며, 병이 진행할수록 증상도 심해질 수 있다고 했다.
◆노폐물 쌓이고 입 마르고…미각 변화 원인 여러 가지
신장은 혈액 속 노폐물과 불필요한 수분을 걸러 소변으로 내보낸다. 기능이 떨어지면 요소 같은 노폐물이 몸에 쌓이고 미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음식이 쓰거나 짜게 느껴지고, 입안에 금속 맛이 남기도 한다. 평소 즐기던 고기를 꺼리는 환자도 있다.
고기를 싫어하게 되는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는 고기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요소가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지만 아직 가설 수준이다.
노폐물만 원인은 아니다. 립킨 박사는 혈압약인 ACE 억제제와 칼슘채널차단제, 고지혈증약인 스타틴도 미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분 섭취를 제한해 입마름이 심해지거나 침 성분이 달라지는 것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국제학술지 ‘신장영양학저널(Journal of Renal Nutrition)’에 실린 호주 연구에서는 투석 환자와 비투석 환자 등을 포함한 말기 신장질환 환자 298명 가운데 38%가 미각 변화를 호소했다. 미각 변화는 메스꺼움, 구토, 식욕 저하, 입마름, 영양실조와 관련이 있었다.
이번 연구는 환자 기록을 분석한 후향적 연구여서 미각 변화가 영양실조를 직접 일으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식사 제한이 필요한 환자가 음식 맛까지 제대로 느끼지 못해 먹는 양이 줄어들면 영양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
◆찌개에서 쇠 맛 난다고 신장 이상? 다른 원인도 살펴야
미국 국립청각·의사소통장애연구소(NIDCD)에 따르면 상기도 감염, 일부 항생제·항히스타민제, 잇몸질환, 구강 위생 문제도 음식 맛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코도 원인이 된다. 코가 막히거나 후각이 떨어지면 혀의 미각 기능이 정상이어도 음식 맛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진다.
국제학술지 ‘BMC 신장학(BMC Nephrology)’에 발표된 미국 연구에서는 40세 이상 성인 3527명을 분석한 결과, 만성콩팥병 환자의 후각 이상 비율이 30%로 신장질환이 없는 사람(15%)의 두 배였다.
반면 미각 이상 비율은 만성콩팥병 환자 13%, 비환자 17%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연구 대상과 측정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음식 맛이 계속 이상하다면 최근 감염 여부, 복용 약물, 코막힘, 구강 상태부터 확인해야 한다. 새로 먹기 시작한 약이 있으면 의료진에게 알리고, 미각 변화가 생겼다고 임의로 약을 끊어서는 안 된다.
◆밤마다 가렵고 자다가 다리에 쥐 난다면
미국 국립당뇨병·소화기병·신장질환연구소(NIDDK)는 진행된 만성콩팥병의 증상으로 피부 가려움, 식욕 저하, 근육 경련, 피로, 부종 등을 제시한다.
신장질환과 관련된 가려움은 몸 일부나 전체에 나타나며, 밤에 심해져 잠을 방해하기도 한다.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요독물질 축적, 피부 건조, 염증 반응, 신경계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 깨는 근육 경련도 신장 기능 저하와 관련될 수 있다. 전해질 불균형 등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가려움은 피부질환이나 약물 때문에, 근육 경련은 탈수나 근육 피로 때문에 생길 수도 있다.
◆초기엔 증상 없어…혈액·소변검사로 확인해야
만성콩팥병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음식 맛이 달라지거나 몸이 가려워질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특히 당뇨병이나 고혈압이 있다면 별다른 증상이 없어도 정기적으로 신장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기본 검사는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다. 혈중 크레아티닌 등으로 계산하는 추정 사구체여과율(eGFR)은 신장이 혈액을 얼마나 잘 걸러내는지 보여준다. 소변 알부민·크레아티닌 비율(uACR)은 신장 손상 여부를 확인하는 데 쓴다.
만성콩팥병은 신장 기능 저하나 손상을 나타내는 이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될 때 진단한다. 검사 한 번에서 수치가 나쁘게 나왔다고 곧바로 질환으로 진단하지는 않는다. 음식 맛 변화에 원인 모를 가려움이나 근육 경련까지 반복된다면 진료를 받아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