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일시금’ 신청 안 하면 연금으로 자동 지급 검토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 발표…지난해 연금 수령 계좌 16.5%뿐
2028년부터 사외적립 단계적 의무화
뉴시스

퇴직급여를 받을 때 일시금으로 받겠다고 미리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가 검토된다. 또 목돈이 급할 때 적립금을 깨는 대신 퇴직연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대출상품 출시도 추진된다.

 

29일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당정협의를 거쳐 이런 내용을 담은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2월 퇴직연금을 두고 처음 나온 노사정 공동선언을 구체화한 것으로,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처럼 근로자가 기댈 만한 노후 소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노사정 공감대가 반영됐다.

 

방안은 퇴직금을 한 번에 받기보다 오래 나눠 받도록 유도하고,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모아 굴리는 기금형 퇴직연금으로 수익률을 높이는 내용을 담았다.

 

◆ 500조원 쌓였는데…10개 계좌 중 8개는 한 번에 찾았다

 

퇴직연금은 2005년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정으로 도입됐다. 사용자는 1년 이상, 주 15시간 이상 일하고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퇴직연금이나 퇴직금(계속근로기간 1년에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줘야 한다.

 

적립금은 지난해 말 501조4000억원으로 1년 새 69조7000억원(16.1%) 늘었다. 400조원을 넘긴 지 1년 만에 500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연금’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해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받은 계좌는 16.5%에 그쳤고 83.5%는 일시금으로 찾아갔다.

 

다만 금액으로 따지면 사정이 다르다. 지난해 연금으로 나간 금액 비중은 61.6%로 2020년(28.4%)의 두 배 수준이 됐다.

 

연금으로 받은 계좌의 평균 적립금은 1억4891만원, 일시금 계좌는 1833만원이었다. 적립금이 많이 쌓일수록 연금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정부 분석이다.

 

중간에 깨는 경우도 많았다. 2024년 중도 해지는 15조원, 중도 인출은 3조원이었다. 중도 인출 사유는 금액 기준으로 주택 구입이 67.3%로 가장 많았고 임차보증금(23.0%)이 뒤를 이었다.

 

수익률도 낮은 편이다.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6.47%로 집계 이래 가장 높았지만 국민연금(18.82%), 공무원연금(17.2%), 사학연금(18.9%)에는 크게 못 미쳤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국민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30%대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권고하는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60∼70%”라며 “퇴직연금이 20%포인트 정도는 메우는 것이 바람직한 다층적 노후 보증 체계일 것”이라고 말했다.

 

◆ 일시금 받으려면 미리 말해야…‘깨지 말고 빌린다’

 

정부는 퇴직급여를 받을 때 일시금 수령 의사를 먼저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지금은 일시금과 연금 가운데 자유롭게 고를 수 있다.

 

중도 인출 대신 쓸 수 있는 퇴직연금 담보 대출상품 출시를 위한 법·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방안에는 담보를 제공하면 압류를 허용하고 담보 제공 한도를 50%에서 70% 등으로 넓히는 내용이 담겼다.

 

연금과 일시금으로 받을 때의 기대수익·수령액 등을 비교한 정보는 미리 제공하도록 의무화한다. 오래 사는 위험, 운용 손실, 물가 상승을 나눠 지는 다양한 연금상품 개발도 유도한다.

 

퇴직연금 사업자 평가도 바뀐다. 자산운용 수익률, 장기 유지, 연금 수령 등 정량지표 중심으로 평가하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지금은 사업자가 임의로 낸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정성평가 중심이고, 업권별 상위 10% 사업자만 공개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정량평가로 실제 수익을 잘 내는 운용기관이 명확해지면 근로자가 사업장에 운용사로 추가를 요구하는 등 선택권이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세제 지원도 넓혀 현재 퇴직연금 납입액 세액공제율은 12%(총급여 5500만원 이하 15%)지만 청년의 납입액에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15%를 적용한다.

 

이 내용은 세제개편안에 포함됐고, 정부는 2024∼2026년 세제 지원 효과를 점검해 추가 지원도 검토할 계획이다.

 

◆ 2028년부터 모든 사업장 ‘회사 밖 적립’

 

한편 이번 방안에는 퇴직급여 사외적립 단계적 의무화도 담겼다. 연내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1년 준비기간을 거쳐 2028년 100인 이상, 2029년 10∼99인, 2030년 10인 미만 사업장 순으로 모든 사업장이 퇴직급여를 회사 밖에 적립해야 한다.

 

의무는 각 단계 시행 이후 일한 기간부터 적용된다. 퇴직금 체불을 막기 위한 조치다. 지난해 임금 체불액 가운데 퇴직금 비중은 41.1%(8229억원)였다.

 

아울러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와 1년 미만 재직 근로자도 퇴직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실태조사도 진행 중이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도 관련 노사정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11월 중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마련해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를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