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명칭 변경은 일제시대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북한이탈주민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을 ‘북향민’으로 부르는 데 재차 반대 의견을 냈다. ‘북한이 고향인 사람이란 의미의 북향민은 이탈보다 출신이 강조돼 강제송환금지 원칙에 대한 설득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외교부의 반대 의견도 들었다. 법률상 용어가 변경된 건 아니지만 정부는 이미 북향민을 공문서 등에 사용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용어 변경은 한국 사회 정착 후에도 경계인 또는 특수집단으로 낙인효과가 불가피한 탈북자 프레임을 벗어나자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박 의원님과 생각을 달리한다”고 맞받았다. 전수조사를 하겠다곤 했어도 “통일부 정책 범위 내에서 충분히 가능한 용어”라며 결국은 본인 뜻대로 할 것이란 인상을 남겼다. 오죽하면 여당 간사 홍기원 의원이 “이미 7일 국감 때 전수조사로 뜻을 물어 결정하기로 했단 얘길 하셔야지 장관님 뜻만 자꾸 말씀하시냐”며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해결해달라”고 당부했을 정도다.
전수조사가 정책 타당성을 담보하는 건 아니다. 3만명 넘는 탈북민 의견을 다 묻고 듣는 게 쉬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충분한 의견 수렴 차원이라면 ‘진작에 좀 하지’ 싶었다.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온 것이기 때문이다.
‘북향민’ 명칭 논란은 정 장관이 지난해 12월 이재명 대통령에게 내년도 업무계획을 보고하면서 명칭 변경 추진 방침을 밝힌 뒤 본격화했다. 정 장관은 “탈북민들 전원이 기존 명칭, 탈북자라는 명칭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존 명칭이 부정적 인식을 부르고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한다면 변경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 명칭에 거부감이 크단 사실이 새로운 명칭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애초에 명칭 변경 의견 수렴 과정에서 탈북민 단체가 제기했던 우려에도 주목해야 한다. 통일부가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북향민 단체 면담 추진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8~12월 장관 등 당국자들과의 면담에서 “명칭 변경으로 인한 인식개선 효과에 의문”, “탈북이라는 정체성이 희석될 가능성이 있어 충분한 의견 수렴 필요”, “탈북민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 후 추진하는 게 바람직” 등의 의견이 나왔다. 명칭 변경이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 오히려 당사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경험과 정체성을 희석하지는 않을지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국가인권위원회도 7월 “당사자를 지칭하는 명칭은 정체성과 명예감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며 “정책 추진 시 당사자의 의견을 듣고 향후 관련 법안 개정이나 정책 수행에 반영하라”고 권고했다.
우리 사회가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이들과 사회적 통합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책 당사자들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사회통합이란 정책 목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북향민’을 법률상 명칭으로 바꾸는 법 개정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면 새 명칭이 실제로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지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 사회통합을 명분 삼은 정책이 정작 당사자를 소외시켜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