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공부 안 하는 사회, 그 외교능력

과거를 모르면 미래도 없듯
역사적 경험서 얻는 교훈 커
국익을 만드는 지적인 역량
외교의 품격은 성찰서 나와

보통사람들에게 태극기와 애국가는 ‘우리는 하나’라는 징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심하게 갈라져 있다. ‘암살자(들)’이라는 영화 한 편이 또 우리 사회를 분열시켰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문화권력의 ‘후안무치’한 민낯을 드러냈다.

미국과 유럽의 역사소설과 역사영화에는 수많은 공적·사적 사료와 당사자 또는 관련자의 인터뷰가 녹아 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일본의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도 그렇다. 민간의 사료를 중시하는 프랑스 역사학은 역사서술 자체가 마치 소설처럼 생생하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역사소설과 역사영화는 역사학적 사실은 물론 객관적인 고증도 무시하고 작가와 감독의 상상과 주장을 덧칠한 가짜역사다. 그것을 창작의 자유라고 우긴다. 그러나 기억이 남아 있고 관련자가 살아 있는 동시대 관련 작품은 정치색이 가미되면 분란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현주 전 오사카 총영사

사회적 이성이 문제다. 그것은 그 사회의 철학과 이념의 정체성이고 시대정신이다. 그것은 역사경험에 관한 반성의 결과다. 공부를 해야 반성할 수 있고 수치심을 안다. 시대정신은 사회의 지적 수준을 반영한다. 사대주의, 내로남불, 적반하장, 패륜 등 듣기 거북한 용어가 난무하고, 논쟁이 막말싸움이 되는 것은 그 사회가 공부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무지한 사회에는 공유하는 가치가 없고 사회적 이성도 작동하지 않는다. 인공지능(AI)도 그 수준에 따른다. 우리 사회에는 ‘시대정신’이 없다.



공부 안 하는 사회는 정치와 관료, 학계, 언론이 상호작용하는 외교생태계도 부실하다. 외교능력도 그 수준이다. 외교는 남의 책임만 따지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뻔뻔한 전문기술이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다. 무지하면 자기 생각이 없고 늘 외래프레임을 판단기준으로 삼는다. 지배당했던 피해심리가 외교에 진하게 투영된다. 그래서 상대국 관계자의 언동이나 언론보도를 늘 불리하게 해석하고 ‘우리 안의 적’의 책임을 탓하느라 온 나라가 시끄러워진다. 상대방이 못된 시비를 걸어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도발해도 그렇다. 한·미동맹이 난기류라는 주한미국대사의 말 한마디에 한국이 술렁거렸다.(조현 외교부 장관이 “안전벨트를 잘 매면 된다”고 재치 있게 반박해서 그나마 잠잠해졌다) 한국에 돌을 던지는 자가 더 대접받는다. 우리 외교에는 국익을 공유하는 ‘우리’가 없다.

외교생태계가 부실하면 외교는 이념과 거대담론으로 허세만 부린다. 법과 개념을 무시하여 작은 문제를 부스럼으로 키우고 협상력을 약화시킨다. 한·미동맹이 중국을 겨냥하느냐 아니냐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쩔쩔매는 것도 그렇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상대국에 대한 태평양지역으로부터의 무력공격”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중국도 ‘먼저 공격해 올 경우’ 당연히 공동의 적이 된다. 현재 중국은 적이 아니다. 경계하되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한국은 휴전협정 서명당사자인가 아닌가. 휴전협정에는 군사령관들이 서명했으니 유엔군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참전국군과 한국군도 당연히 서명당사자다. 그러면 평화협정 당사자는 누가 되는 것이 유리할까? 한국인가? 미국인가? 유엔인가? 참전국도 포함되나? 유엔은 유엔군총사령관직을 미국에 위임했고 휴전협정을 최종 승인했으니 관련될 수 있다. 한국은 자신이 휴전협정과 평화협정의 당사자라는 논리적 서사(내러티브)도 만들지 않고 평화협정을 논한다.

AI 시대에도 안보적 경제관계와 군사적 동맹을 중시하는 국제관계의 역사적 역학구조는 변함없을 것이라고 한다. 외교는 역사를 빙자하며 재활용한다. 외교는 시간에 기대어 과거를 잊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교에 역사공부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 외교의 경험과 교훈을 기술하는 ‘한국외교사’가 없다. 외교관들조차 우리 외교의 역사를 공부할 수 없다. 그래서 역사반성도 없고 외교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서사도 없다. 그것을 주장하는 레토릭도 활용할 줄 모른다. 물론 외교의 기반은 국력이다. 다만 외교능력은 좌우이념이 아니라 사회적 이성의 수준이 드러내는 외교생태계의 질에 좌우된다.

 

이현주 전 오사카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