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무공훈장은 우리나라에서 군인 등에게 수여되는 무공훈장 중 권위가 가장 높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태극무공훈장 수훈자는 다름아닌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미국 육군 원수다. 이는 6·25 전쟁 초반인 1950년 9월 맥아더가 지휘한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치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윤석열정부 시절인 2024년 1월 미 버지니아주(州) 노퍽에 있는 맥아더 기념관에서 태극무공훈장 전달 행사가 열렸다. 맥아더 유족을 대신해 케네스 알렉산더 노퍽 시장이 대신 훈장을 받았다. 대한민국 1호 태극무공훈장이 실제로 수여되기까지 74년이 걸린 셈이다.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한 직후 허를 찔린 북한군은 급히 도망을 쳤다. 1950년 9월28일 마침내 한국군과 유엔군이 공산군 치하의 서울을 탈환했다. 이튿날인 9월29일 열린 서울 수복(收復) 기념식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가 나란히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맥아더에게 태극무공훈장 증서와 더불어 건국공로훈장 실물을 대신 수여했다. 당시 태극무공훈장은 개념만 있고 실물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다. 맥아더는 이듬해인 1951년 4월 유엔군사령관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돌아갔고, 한국 정부는 훈장 전달 기회를 끝내 놓치고 말았다.
맥아더는 생애 말년을 뉴욕의 호텔에서 보냈다. 1960년대 초 뉴욕 주(駐)유엔 대표부에서 근무한 젊은 외교관 최호중(훗날 외교부 장관 역임)은 유엔 대사를 수행해 맥아더와 만난 기억을 회고록에 남겼다. 맥아더는 “한국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것이 한(恨)”이라며 “내 전략이 받아들여졌다면 한반도는 틀림없이 통일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950년 말 중공군 개입 이후 역전된 전세를 만회하기 위한 묘책을 놓고 백악관 및 합참과 갈등을 빚다가 해임된 것을 한탄한 셈이다. 1957년 인천에 들어선 맥아더 동상은 오늘도 통일의 그날을 염원하며 한반도 산하를 굽어보고 있다.
최근 한·미 동맹의 이상 기류가 도처에서 감지되는 가운데 미셸 스틸 주한 미국 대사가 맥아더 동상을 찾아 눈길을 끈다. 한국계 미국인인 스틸 대사는 지난 2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상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올린 뒤 “인천에서 맥아더 장군 동상에 잠시 들렀다”고 적었다. 이어 “그 자리에 서니 1950년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이끈 맥아더 장군의 리더십과 그 이후 한·미 양국이 함께 걸어온 여정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6·25 전쟁 당시 피로 맺어진 한·미 양국의 혈맹이 흔들리는 듯해 안타깝다. 맥아더가 결코 원하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