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진 아이들 곁 지킨 최불암의 41년…가난한 시인은 그에게서 아버지를 봤다

조호진 시인 인터뷰…10년 전 만난 최불암 “겉과 속이 같았던 분”
낡은 셔츠 기억해 점퍼·책값 건네…“돌아가신 아버지 떠올라” 회고
고인 29일 별세…소년 수형자에 연극 가르치고 초록우산 후원회장 41년
“하는 것도 별로 없는 데 무엇이나 하는 양 비치는 게 쑥스럽소.”

 

2016년 5월, 조호진 시인은 배우 최불암과 감자탕집에서 처음 만났다. 소년 수형자와 위기청소년을 돕는다는 공통점으로 지인이 소개해 준 자리였다.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조 시인이 아동 후원 활동에 관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정중한 거절이었다.

 

조호진 시인(왼쪽), 배우 최불암. 조 시인·초록우산 제공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이 지난 29일 별세했다. 31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조 시인은 10년 전 첫 만남과 그 뒤 이어진 인연을 떠올렸다.

 

당시 조 시인은 최불암에게 자신이 펴낸 시집 ‘소년원의 봄’과 시화 액자 ‘누군가’를 선물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며칠 뒤 뜻밖의 연락이 왔다. 시인이 입을 만한 옷을 챙겨놓았으니 서울 여의도 자택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최불암은 첫 만남에서 조 시인이 입었던 10년 된 낡은 셔츠를 기억하고 있었다.

 

최불암은 시인에게 준비한 점퍼를 건넸다. 이어 주머니에 넣어둔 봉투는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했다. 흰 봉투에는 책값에 보태라며 챙겨준 돈이 들어 있었다. 그 봉투의 겉면에는 손수 쓴 글도 적혀 있었다.

 

“쓰신 시 ‘누군가’를 책상 앞에 붙여 놓았습니다. 나를 다지고, 사랑을 다지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맙소. 최불암(씀).”

 

아동 후원 활동에 관한 인터뷰는 쑥스럽다며 사양했던 배우가 처음 만난 시인의 낡은 셔츠는 잊지 않았다. 선물 받은 시 한 편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조 시인은 “자신이 건넨 시가 최불암의 마음에 닿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후 최불암은 조 시인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그해 성사된 인터뷰에서 최불암은 소년교도소에서 만난 아이들의 사연과 이들을 위해 이루고 싶은 꿈을 털어놓았다.

 

조호진 시인의 시 ‘누군가’. 원문 시인 제공·Chat GPT로 재구성

◆“왜 그러니 했더니 부모가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조 시인은 최불암이 생전 소년 수형자들에게 쏟았던 정성을 이야기하다 고인에게 직접 들은 일화 하나를 꺼냈다. 2015년 12월 김천소년교도소에서 열린 뮤지컬 ‘날개3’ 공연에 얽힌 이야기였다.

 

국내 유일의 소년교도소인 김천소년교도소는 법원의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이 생활하는 소년원과 달리, 형사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소년 수형자들이 형을 사는 곳이다. 살인·강도 등 중범죄를 저지른 소년도 수용된다. 당시 소년 수형자 20여명은 10개월 동안 춤과 노래, 연기를 연습해 무대에 올랐다.

 

최불암은 공연이 끝난 뒤 출연자들의 부모를 무대로 불렀던 일을 잊지 못했다.

 

“근데 한 아이가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는 거예요. 왜 그러니 물었죠. 부모가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미어지죠.”

 

고인은 아동·청소년 후원에 오랫동안 힘써왔다. 초록우산에 따르면 최불암은 1981년 ‘전원일기’ 촬영 중 아역 배우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아동 결연 후원을 시작했다. 1985년부터 41년간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국내외 어린이들을 지원했다.

 

2024년 5월 29일 최불암 사단법인 제로캠프 이사장(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법무부 교정본부 회의실에서 열린 ‘제로캠프 운영위원회 정기총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

소년 수형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2년 법무부와 함께 제로캠프 운영위원회를 발족하고 위원장을 맡았다. 2013년부터 김천소년교도소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했으며, 2014년 사단법인 제로캠프가 설립된 뒤에는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위기청소년들이 연극을 배울 수 있도록 사비를 들여 홍대에 공연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고인은 2016년 조 시인과의 인터뷰에서 “위기청소년을 위한 대안 예술학교를 세우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고 밝혔다. 연극과 음악, 미술 등 종합예술을 가르쳐 아이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예술의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술은 상처를 치유해 줍니다. 예술은 분쟁보다 평화를 사랑합니다. 예술은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줍니다.”

 

故최불암 저서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에 관하여’. 샘터(샘터사) 제공

◆아버지의 정을 몰랐던 ‘국민 아버지’

 

1959년 연극으로 데뷔한 최불암은 67년간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MBC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으로 18년, ‘전원일기’의 양촌리 김 회장으로 22년을 시청자와 함께했다. KBS ‘한국인의 밥상’도 14년간 진행하며 전국의 이웃을 만났다.

 

안방극장에서는 오랫동안 ‘국민 아버지’였지만, 정작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부친을 여의어 그 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최불암은 2007년 펴낸 책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에 관하여’에서 “나는 사실 아버지를 잘 몰라요”라고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는 “‘전원일기’의 김 회장을 연기하면서 비로소 배웠다”고 회고했다.

 

대신 사람의 형편을 헤아리는 법은 어머니 이명숙 여사에게서 배웠다. 이 여사가 운영하던 서울 명동의 주점 ‘은성’은 가난한 문인들이 마음 편히 드나들던 사랑방이었다.

 

최불암은 책에서 어머니가 술값 대신 시계를 맡기고 간 청년을 훗날 골목길에서 남몰래 만나 시계를 돌려준 일을 떠올렸다. 돈이 없어 술값을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청년이 부끄러워할 것을 헤아린 배려였다. 수십 년 뒤 아들 역시 처음 만난 가난한 시인의 낡은 셔츠를 기억하고 점퍼와 책값을 건넸다.

 

故 최불암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 초록우산 제공

최불암은 사석에서도 권위적인 어른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 시인은 고인이 젊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도 함께 가며 격의 없이 어울렸다고 기억했다.

 

“참 정이 많은 어르신이셨어요. 무엇보다 겉과 속이 같은 어른이셨어요.”

 

조 시인은 최불암을 이렇게 기억했다.

 

“전 최불암 선생님이 한국인들에게 아버지를 선물해 줬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잃은 사람들,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