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영업이익 3100억원의 롯데백화점이 부산 센텀시티점을 신세계에 내놨다. 부산의 지역 경제와 문화를 상징하는 롯데가 19년간의 경쟁 끝에 신세계에 ‘판정패’를 당했다는 소식에 유통업계가 들썩였다. 부산 센텀시티점 뿐만이 아니다. 서울 강북권의 대표적인 백화점이었던 롯데백화점 미아점은 현재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고, 롯데백화점 건대스타시티점는 2028년 영업 종료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장기근속 20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에도 나섰다. 명품매장을 중심으로 기록한 대규모 흑자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롯데가 핵심사업인 백화점 사업과 조직에 부문에 칼을 데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방인 부산서 신세계에 판정패 당한 롯데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번 롯데백화점 인수에선 그간 부산에서 치열하게 맞붙어온 백화점 업계 1, 2위인 롯데와 신세계의 경쟁관계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매각이 결정된 롯데백화점 부산센텀시티점의 경우, 바로 옆의 신세계 센텀시티점이 세계 최대 규모와 압도적인 명품 라인업을 무기로 매출 2조원을 돌파하는 동안, 연 매출이 1300억원대까지 급감했다. 두 점포의 매출 격차가 16배 이상 벌어지면서 저효율 점포를 안고 가기보다 정리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게 롯데 경영진의 판단이다.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은 2007년 문을 열어 먼저 자리를 잡았음에도 약 3만6천㎡(1만1000평)의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운 입지에서 시작했다. 2년 뒤인 2009년 문을 연 신세계 센텀시티점은 세계 최대규모 기네스 기록을 가진 점포로 2016년 센텀시티몰이 신축되면서 총 영업면적이 19만8천462㎡(6만20평)에 달하는 모습을 자랑한다. 규모를 내세운 근처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 밀려 주요 명품 입점을 유치하지 못하는 등 영업에 어려움을 겪은 탓에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은 전국 롯데백화점 점포 중 하위권 매출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미아점 매각과 건대스타시티점도 영업종료
센텀시티점 뿐만이 아니다. 롯데백화점은 미아점은 현재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약 2200억원 규모의 매각 막바지 협상 및 절차를 진행 중이다. 롯데백화점이 미아점은 인근 현대백화점 미아점과의 경쟁에서 밀린 데다 상권 침체까지 겹치면서, 지난 10년간 매출이 계속 하락해왔다.
롯데백화점 건대스타시티점이 철수하는 배경은 좀 더 구체적이다. 롯데백화점 건대스타시티점은 2028년 10월 영업 종료할 계획이다. 건대입구 상권은 유동인구가 매우 많지만, 10~20대 젊은 층 위주로 형성되어 있다. 그결과 롯데의 예상과 달리 이들은 주로 주변의 먹거리 골목, 패션 로드숍, 성수동 팝업스토어 등을 소비할 뿐 백화점에서의 고가 낙수효과로 이어지지 않았고, 부유층 고객들조차 대형 명품 브랜드 라인업이 부족한 건대점 대신, 잠실점(롯데월드몰·에비뉴엘)으로 이동해 대형 쇼핑을 해결하는 상권 이탈 기현상이 지속됐다. 그결과 건대스타시티점은 2022년 연간 거래액 1553억원에서 지난해 1419억원으로 꾸준히 매출이 줄었고, 롯데백화점 전국 31개 점포 중 최하위권인 28위에 올랐다.
◆“돈 들어가는 명예퇴직은 호황일 때 한다”
명예퇴직을 살펴보자. 롯데백화점이 9~10월에 진행된 희망퇴직은 5년 전보다 보상 기준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에 신청 인원이 비슷하더라도 소요 자금 규모가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 위로금만 기준임금 40개월분(약 3.3년 치)으로 2021년(24개월분)이나 롯데홈쇼핑(24개월분)보다 1.5배 이상 많다. 또 근속 20년 이상뿐만 아니라 대리급(GL2) 이하는 근속 15년 이상만 되어도 신청할 수 있게 대상을 넓혀 잠재적 신청자 모수가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개인당 지급되는 위로금·지원금·학자금 유급휴가 비용을 합산하면 고연차 직원 1인당 수억 원 단위의 자금이 집행돼 전체 소요 자금은 2021년의 규모를 상회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롯데백화점이 자신 있게 직원들에 대한 명예퇴직에 나선 것도 이런 백화점 사업이 뒷받침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롯데는 백화점의 분기 최대 매출 경신 및 해외 사업(베트남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등)의 호조로 영업이익이 가파르게 성장했다. 롯데백화점은 매출 1조7635억원에 영업이익 3109억원으로 롯데그룹의 주력 회사의 자존심을 되찾았다. 백화점 사업부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롯데쇼핑 전체 영업이익의 약 91%를 차지했다. 3분기 전망도 나쁘지 않다. 증권가에선 롯데쇼핑 이 3분기 매출액 3조5897억원, 영업이익 1752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변화하는 롯데
하지만 롯데쇼핑의 부채를 살펴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롯데쇼핑은 올해 2분기 영업이익 확대와 순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수익성 개선 흐름을 보였지만 21조원을 웃도는 총부채와 높은 차입금 부담으로 인해 재무건전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지목되어왔다. 현재 롯데쇼핑의 연결 총자산은 38조4732억원, 총부채는 21조3638억원으로 부채비율은 약 124.9%에 달한다. 또 3분기 백화점 부문(영업이익 3109억원)과 홈쇼핑 부문(463억원)을 제외한 할인점(-40억원), 전자제품전문점(-137억원), 이커머스(-132억원) 등 주요 사업 부문에서는 영업적자가 이어져 사업부별 실적 양극화 이어졌다.
결국 현금 유동성을 확보한 지금이 점포 수와 외형을 확장하던 ‘양적 성장’의 시대를 끝내고, 점포당 효율성과 독점적 콘텐츠를 극대화하는 ‘질적 성장’의 시대로 완전히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낼 적기라는 게 롯데 경영진의 판단이다. 과거에는 ‘전국 점포 수 1위’가 곧 브랜드의 자존심이자 바잉 파워로 연결됐지만, 이머커스가 대세가 된 최근 백화점은 만성 적자나 경쟁력이 떨어진 점포를 과감히 솎아낼 필요가 있다. 특히 애매한 점포 5개를 운영하는 것보다 압도적인 대형 점포 1개를 키우는 것이 매출과 집객에 훨씬 유리해졌다. 이에 따라 유통 대기업들은 확보한 현금을 핵심 거점 점포에 투자를 집중하는 모양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신세계 강남점을 비롯해 롯데 잠실점·본점, 현대 판교점 등 연 매출 1조~3조 원을 올리는 이른바 ‘메가 점포’들이 백화점 전체 영업이익을 견인하는 구조가 굳어졌다”며 “롯데 노원점이 17개월 동안 영업면적의 80%를 전면 리뉴얼하여 서울 동북권 거점으로 거듭난 것처럼, 살아남은 핵심 점포에는 파격적인 투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