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소아응급의학회가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압수수색 논란과 관련해 응급실 등 필수의료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수사 기준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의료과실 여부를 확인하는 수사에는 협조하되, 진료 공간에서 이뤄지는 강제수사가 다른 환자의 안전과 의료진의 판단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학회와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협의회는 30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소아응급실 압수수색 규탄 및 진료권 보호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의료진 이탈을 막고 소아응급 진료를 유지하기 위해 현재 준비 중인 수사 가이드라인 초안을 11월 말까지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학회는 “응급실은 결코 성역이 아니며, 환자의 죽음을 누구보다 엄숙하고 무겁게 받아들이는 공간”이라며 “진료 과정에 명확한 과실이 있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면 경찰 수사에 언제나 성실히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응급실은 365일 24시간 진료가 이어지고 환자 상태가 급변할 수 있는 공간인 만큼 수사 방식에도 별도의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처방과 의무기록이 전산에 입력되고 수정 이력도 남으며, 폐쇄회로(CC)TV 등으로 진료 과정을 확인할 수 있어 수사관이 진료 공간에 직접 진입해야 하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최선의 치료에도 질병의 급격한 진행과 의학적 한계로 소아 환자가 숨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학회는 의료진을 처음부터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방식의 수사가 현장에 공포와 위축을 불러 방어진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픈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호소했다.
학회는 수사 가이드라인에 포함할 세 가지 원칙도 제시했다. 우선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 생명이 위급한 필수의료 현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원칙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사전 협의를 거치고, 법원의 영장 심사 과정에서 의료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임의제출이나 자발적 협조로 확보할 수 있는 자료에 대해 무분별하게 영장을 집행하지 않도록 통제 장치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환자 사망 후 보호자의 신고나 경위 확인 요청이 있다는 이유로 진료 공간을 범죄 현장처럼 취급하는 조사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압수수색 당시 진료에 영향을 줬는지를 놓고는 의료계와 경찰의 입장이 엇갈린다. 학회는 당시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도 현장에 있었다며 응급실 운영과 진료에 영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찰은 병원 관계자와 사전에 협의하고 비어 있는 진료실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압수수색을 집행했으며, 진료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학회는 “경찰과 대립하거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다”라며 소모적인 갈등보다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희는 아이들의 곁을 지키고 싶다”며 “두려움 없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될 수 있도록 공감과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