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의 양도소득세를 체납했다는 이유로 당국이 내린 출국금지 처분은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산을 빼돌릴 목적이 없는 데다, 출국을 막으면 유일한 생계수단이 차단돼 오히려 세금 징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취지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9단독 이주일 판사는 체납자 권모씨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출입국금지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10월 13일 판결했다.
권씨는 2021년 5월 한 법인에 자신의 토지 지분 등 부동산을 매도했다. 이로 인해 9억2745만여원의 양도소득세가 부과됐으나, 권씨는 올 7월 기준 6억2594만여원을 체납한 상태였다. 이에 국세청은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요청했고, 법무부장관은 올 5월 권씨에게 같은 달 15일부터 11월14일까지 6개월간 출국금지 처분을 내렸다.
조사 결과 권씨가 세금을 내지 못한 것은 부동산을 매수한 법인의 오피스텔 시행사업이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권씨는 매매대금 중 약 19억원을 회수 불능 상태로 받지 못했고, 실제 수령한 2억7000여만원 역시 대부분 근저당권부 채무 변제와 다른 세금을 내는 데 썼다.
권씨는 미성년 자녀가 유학 중인 국가의 한 어학원에서 일하며 월 250만원가량을 벌어 현지 생활비와 교육비로 사용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2022년 3월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소액이나마 꾸준히 세금을 납부했고, 모친에게 돈을 빌려 약 2억900만여원을 추가로 내기도 했다.
법원은 권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조세체납을 이유로 한 출국금지는 체납자가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 출국 자유를 제한해 심리적 압박을 가하려는 목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권씨가 차명재산을 형성하는 등 재산을 은닉하거나 도피할 가능성을 추론할 단서가 없다”며 “오히려 출국을 금지하면 권씨의 현재 유일한 소득원을 차단해 지나치게 큰 불이익을 주고, 조세채권 회수 가능성을 낮추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독립유공자의 외손자인 권씨가 독립유공자법상 생활안정 지원금을 받고 있는데 장기간 국외 체류 시 이 지원금이 끊기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재산 도피 목적으로 장기 체류할 동기도 없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