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로 두 팔을 잃었지만, 붓을 놓지 않았다. 의수 끝에 붓을 끼우고 먹선을 그어 인간의 몸짓과 움직임을 포착해 온 석창우 화백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29일부터 12월 5일까지 서울역 인근 모두미술공간에서 2026 장애예술인 집중조명전 ‘석창우 : 손끝의 물음표’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의 서사보다 한 예술가가 오랜 시간 구축해 온 독창적인 조형 언어와 예술적 성취에 주목한다. 장애예술을 복지와 재활의 영역에서 벗어나 동시대 미술의 관점으로 바라보자는 취지다.
1955년생인 석 화백은 산업재해로 양팔을 잃은 뒤 의수에 붓을 끼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통 수묵화에 서양의 크로키 기법을 접목한 ‘수묵 크로키’를 자신만의 예술 언어로 발전시켰다. 빠르고 힘 있는 먹선으로 인체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회화뿐 아니라 공예와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로 창작 영역을 넓혀 왔다.
그의 작품은 국제무대에서도 주목받았다. 2014년 소치 동계패럴림픽 폐막식과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선보인 수묵 드로잉 퍼포먼스는 역동적인 몸짓을 먹선으로 표현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시 제목인 ‘손끝의 물음표’는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의수 끝의 둥근 갈고리 모양에서 착안했다. 동시에 자신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일궈 온 작가의 탐구 정신을 담았다.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질문을 던지는 의미도 있다.
전시장에는 초기작부터 최근 작품까지 인체 드로잉과 군상, 스포츠, 문자 추상, 색과 점을 활용한 주요 연작이 소개된다. 특정 시기의 대표작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실험과 변화를 거쳐 확장된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일상과 창작 과정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공간도 마련된다. 컴퓨터로 작성한 일기와 필름 사진 등 기록물을 통해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삶의 흔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수묵 크로키를 체험하는 워크숍 ‘손끝부터 발끝까지: 석창우 작가와 함께 몸 그리기’와 작가의 창작 여정을 듣는 ‘작가와의 대화’가 마련된다. 영유아 대상 교육 프로그램 ‘물처럼 흐르고 꽃처럼 피어나는 몸’에서는 종이 위에 점과 여백을 표현하며 다양한 몸의 움직임을 예술로 경험할 수 있다.
방귀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은 “석창우 작가는 자신의 몸과 작업 도구를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라며 “이번 전시가 그의 작품과 예술적 성취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모두미술공간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장애예술인의 작업 세계와 예술적 성취를 동시대 미술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집중조명전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