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남정훈 기자] 먼 훗날, 2026년 10월의 야구를 추억할 때 떠오르는 이름은 딱 하나 아닐까. 김도영. 그만큼 김도영의 올해 10월은 찬란하고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10월이 위대했던 만큼 11월의 첫 날엔 너무나 서글펐다. 4타수 무안타. KIA 팬들을 좌지우지하며 옷차림 색깔까지 결정하던 ‘슈퍼스타’ 김도영의 가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김도영은 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의 2026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2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장해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KIA 타선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김도영이 침묵하자 다득점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KIA는 삼성에 1-6으로 패하며 시리즈 전적 2승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플레이오프 3차전까지 테이블 세터진이 밥상을 차리기는커녕 ‘테이블 쉼터’ 역할을 하자 이범호 감독은 4차전에 칼을 빼들었다. 아예 김도영을 테이블 세터 한 자리에 가져다 놓는 전진 배치롤 감행했고, 김도영은 5타수 2안타 2득점으로 찬스메이커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4차전 승리에 고무된 이범호 감독은 5차전에서도 ‘김도영 2번 카드’를 유지함과 동시에 4차전 라인업을 ‘복붙’했지만, 오판이 하나 있었다. 대구 라팍에서의 후라도는 상상 이상이었다는 것. 대구에서 열린 2차전에서 6.2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던 후라도는 이날은 한 술 더 떴다. 7이닝 1실점(비자책)으로 더 완벽한 투구를 펼쳤다.
김도영도 1회 첫 타석에 후라도의 체인지업에 땅볼, 3회 두 번째 타석엔 투심에 평범한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6회 세 번째 타석에서도 후라도의 체인지업에 힘없는 땅볼을 때렸지만, 삼성 3루수 김영웅이 이를 제대로 포구하지 못하면서 실책으로 출루했지만, 후속타 불발에 홈을 밟지 못했다. 8회 네 번째 타석에서 좌완 이승민의 몸쪽으로 날카롭게 들어온 직구에 1루수 파울 플라이로 물러났다. 김도영의 가을 마지막 타석이었다.
비록 KIA의 가을야구 도전은 플레이오프에서 끝이 났지만, 김도영의 10월 존재감은 너무나 뛰어났다. 타석에 서는 것만으로도 팬들의 가슴은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KIA가 3위를 확정했던 정규리그 막판이 그 서곡이었다. 10월5일 잠실 LG전에서는 3-4로 뒤진 9회말 2사 1,2루에서 고우석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을 때려냈다. 고우석이 KBO리그에 복귀해 맞은 유일한 피홈런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12일 광주 LG전. 이날 승자가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 김도영은 2-2로 팽팽히 맞선 8회 무사 1루에서 존 케네디를 상대로 결승 투런포를 때려내며 KIA에게 준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선물했다. 그 홈런은 김도영을 생애 첫 홈런왕에 오르게 만들었고, KBO리그 개인 통산 100호 홈런이었다. 그의 홈런 하나하나에는 서사가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KIA의 가을야구를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하게 만든 김도영. LG와의 준플레이오프도 오롯이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1차전 1-1로 맞선 4회 결승 솔로포, 8회 쐐기 투런포 포함 4타점으로 경기를 지배하더니 3차전에선 2회 만루포를 터뜨리며 준플레이프를 단 3경기 만에 끝내게 만들었다. 김도영이 이 준플레이오프에서 친 안타는 딱 3개. 그게 모두 홈런이었고, 그것도 경기를 결정짓는 드라마틱한 홈런이었다. 자신이 괜히 슈퍼스타라 불리는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김도영은 전매특허인 홈런포는 1개에 불과했지만, 1차전 1회 도루로 상대 배터리를 흔들며 자신은 홈런만 치는 타자가 아님을 각인시켰다. 테이블 세터진의 부진으로 5경기에 타점은 단 1개(솔로포)에 불과했고, 4차전부터는 직접 2번타자로 출전해 찬스 메이킹에 나서기도 했다.
10월에 열린 정규리그 10경기, 준플레이오프 3경기, 플레이오프 5경기 등 총 18경기에서의 김도영의 성적은 타율 0.306(62타수 19안타) 8홈런 23타점. 그렇게 김도영은 2026년 10월을 화려하게 수놓고, 11월 첫 날 4타수 무안타를 끝으로 올 시즌을 마감했다. 지난 시즌 햄스트링 부상만 세 차례를 당하며 30경기만 뛰고 시즌아웃 당했던 김도영은 올 시즌 자신이 건강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보일 수 있는지 여실히 증명했다. 그야말로 ‘미스터 옥토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