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그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러닝을 안 좋게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고.”
방송인 기안84(본명 김희민)가 지난달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인생84’에 올린 영상에서 배우 권화운과 대화하던 중 이처럼 말했다. 달리기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권화운과 서울 도심의 마라톤 대회를 이야기하다 나온 반응이다.
기안84는 “서울에서 너무 많이 하니 길이 막힌다”며 “길도 다 틀어막아 놓고”라고 말했고, 권화운도 여러 대회가 동시에 열리는 상황을 언급했다. 러닝 열풍을 타고 마라톤이 인기 스포츠 행사로 자리 잡았지만, 도로를 이용하는 시민에게는 대회가 불편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의미다.
달리기 열풍은 마라톤 대회 참가자 증가에서도 확인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마라톤 대회는 2022년 142회에서 2023년 205회, 2024년 254회로 거듭 늘었다. 참가 인원도 같은 기간 약 33만명에서 100만여명으로 급증했다.
대회가 늘면서 교통통제에 따른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시내에서 열린 한 마라톤 대회로 버스 190개 노선의 우회 등 교통 불편이 불거지자 온라인에서는 비판이 이어졌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입장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오 시장은 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소중한 주말 아침 시민들께서 겪으셨을 답답함과 불편함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최 측에 코스 조정을 수차례 요청하며 협의했지만 끝내 대규모 불편을 막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내년 대회는 코스와 일정을 원점에서 다시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오 시장은 장소별 참가 인원 상한 등을 담은 ‘마라톤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서울시 후원 대회도 지난해 15개에서 올해 7개로 줄였다고 설명하면서도, 중앙정부 후원 대회가 지난해 1개에서 올해 23개로 대폭 증가하면서 대규모 교통통제가 30차례를 넘겼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마라톤 대회는 지자체 허가 대상이 아니고 도로 통제 권한도 경찰에 있어 서울시 힘으로는 한계가 많다”며 언론사와 공공기관 등 대회 주최 측에 시민 불편을 무겁게 고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마라톤은 참가자와 관광객을 유치해 숙박·외식·소매업 소비를 늘리고 도시 브랜드를 알리는 효과가 있다.
다만, 대회가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가 코스 주변의 모든 주민과 사업자에게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도로 통제로 출퇴근 등 이동에 불편을 겪거나, 평소보다 매장 손님이 줄어드는 문제로 자영업자 등이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해외에서도 마라톤의 경제적·상징적 가치와 주민의 이동권·생계가 충돌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 아구스’ 등 외신들에 따르면 케이프타운에서는 올해 5월 ‘케이프타운마라톤’을 둘러싸고 GOOD당과 시 당국이 맞섰다.
GOOD 측은 시내 중심가와 해안도로 등 주요 도로가 통제되면서 우드스톡·솔트리버·월머 에스테이트 등지의 주민들이 동네를 벗어나거나 직장에 가기 어렵다는 민원이 제기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시 당국은 수개월 전부터 지역구 의원과 주민·사업자 회의를 진행하고 약 1만5000장의 안내문을 배포했으며, 노상주차가 제한되는 지역에는 대체 주차 공간을 마련했다고 반박했다.
미국 WJCL 등 조지아주 현지 언론은 마라톤 대회로 인한 상권 피해 사례를 2021년 보도했다.
‘로큰롤 마라톤’을 두고 상인들은 파크 애비뉴와 드레이턴 스트리트 일대가 며칠간 차단돼 매장이 문을 닫은 것처럼 보이고 보행자 이동도 어려워졌다고 반발했다.
주최 측은 주민과 사업자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대회 주말에만 도로를 통제한다고 설명했지만, 상인들은 결승선과 바리케이드가 영업에 미치는 영향을 호소했다.
미국 뉴욕시티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주민 불편을 줄이고자 코스를 바꿨다는 보도도 나왔다.
앞서 NBC뉴스는 “11월 뉴욕시티마라톤에 참가하는 이들은 지금과는 다른 코스를 뛰게 될 것”이라고 지난 9월 보도했다.
이 매체는 “26.2마일(약 42.2㎞)에 달하는 마라톤 대회는 열릴 때마다 도시 곳곳에서 대규모 교통 우회를 유발한다”며 “브롱크스의 모트 헤이븐(Mott Haven) 지역을 지나는 20마일 지점에서 불편이 지나치게 커지자 대회 주최 측은 결국 코스를 변경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약 1.6㎞에 해당하는 특정 구간이 슈퍼마켓과 세탁소 등이 위치한 블록을 둘러쌌고, 이 때문에 공공주택 단지에 거주하는 1800여세대 주민들이 대회가 열리는 동안 편의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면서다.
NBC 뉴스는 “마라톤 코스 변경은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