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철 한국재정학회장 “부채로 마련한 돈을 ‘추가 세수’로 포장… 국회 통제도 피해” [세계초대석]

106조 국채 발행하면서 104조 기금 조성
빚 내서 미래대응기금… 미래세대용 아냐
정부 재량으로 100조원대 돈 사용도 문제

반도체 호황 공급부족 인한 값 폭등 영향
산업 사이클 따라 국가 재정 좌지우지돼
재정충격 흡수 아닌 되레 불안 키울 우려

韓銀 브레이크 밟는데 정부는 가속페달
재정 확대·금리 인상 엇박자 부작용 커
금리 추가적 인상 땐 기업들 피해 클 것
“미래대응기금이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라면, 적어도 빚을 내진 말아야 합니다.”
김우철 한국재정학회장은 지난 10월 20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초과세수로 부채를 줄여 재정건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정탁 기자

역대 최대 규모인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김우철 한국재정학회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미래대응기금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 회장은 “예산에서 106조원의 부채를 찍어내고, 기금에서는 104조원의 여유자금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라며 “부채로 마련한 돈을 ‘추가 세수’로 포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반도체 가격이 내년 3분기부터 내려가는 경우를 가정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2029년이면 미래대응기금이 소진될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재정지출을 줄이고 연간 30조원 이상을 부채 갚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경제는 인공지능(AI)발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고도성장기 이후 가장 큰 폭의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2년 연속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4만달러대 진입이 유력해졌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호황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사이클 산업인 반도체에 우리 경제의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데다 호황의 과실이 일부에만 집중되며 ‘K자 양극화’가 심화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지금 정책적으로 필요한 것은 특정 산업군이나 특정 지역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시장에 ‘인내 자본’을 형성하는 것”이라며 “국내에서 제2의 반도체 산업이나 스페이스X와 같은 기업이 수십년에 걸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정부가 시장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우철 한국재정학회장 세계초대석 인터뷰 /2026.10.20 남정탁 기자

―정부가 ‘추가 세수’라는 개념을 만들고 ‘미래대응기금’을 조성했다.

“미래대응기금은 구조나 성격을 봤을 때 기존 일반회계의 연장선에 가깝다. 기업으로 치자면 일종의 물적분할을 한 셈이다. 내년도 예산안을 살펴보면 일반회계에선 재원이 부족해 부채를 찍어낸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추가 세수’라는 개념을 가져와서 기금을 조성했다. 언뜻 보면 세금이 넘쳐서 추가 세수를 떼어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산에서는 106조원의 부채를 찍어내고, 기금에서는 104조원의 여유자금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부채로 마련한 돈을 ‘추가 세수’로 포장한 것이다. 더구나 내년도 예산안에는 엑스트라 머니(여윳돈)도 없다. 지출로 모두 소진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늘어난 세수는 재정지출이 올해 본예산 대비 12.8% 늘어나며 모두 소진하고, 부채를 찍어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미래대응기금의 견제장치가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래대응기금은 구조나 성격도 문제지만, 집행 방식에도 문제가 많다. 예산은 기본적으로 국회의 통제하에 설계되고 집행해야 한다. 하지만 미래대응기금의 국회 통제장치는 매우 약하다. 사실상 정부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구조다. 정부 개정안을 보면 미래대응기금은 세입이 부족할 때 국회 의결 없이 일반회계로의 전출이 가능한 한도(30%) 산정에서 예외를 뒀다. 100조원이 넘는 여유자금을 국회 심의 없이 꺼내 쓸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이다. 이는 한 해의 모든 수입과 지출을 예산에 빠짐없이 계상해 국회 심의를 받도록 한 예산총계주의의 취지에 어긋난다.”

―미래대응기금을 어떤 식으로 조성했어야 한다고 보나.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을 조성하려 한다면, 적어도 빚을 내진 말았어야 했다. 빚으로 조성한 기금은 결코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 될 수 없다. 사실상 백지수표에 사인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예산을 짜는 과정에서 미래세대를 걱정했다면, 내년도 지출증가율을 7∼8%선으로 낮추고 나머지 여윳돈으로 부채를 갚아야 했다. 그렇게 2년 정도 부채를 갚고도 초과세수가 발생한다면, 그때 가서 기금을 조성해도 늦지 않다. 그 시점에 가선 ‘미래세대’를 위한 기금의 역할도 일정 부분 기대할 수 있다.”

김우철 한국재정학회장 세계초대석 인터뷰 /2026.10.20 남정탁 기자

―전례없는 호황을 겪고 있지만, 호황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금의 반도체 호황은 생산과 판매가 증가해서 생긴 호황이 아니다.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폭등해서 생긴 호황이다. 가격이 꺾인다면 언제든 가라앉을 수 있는 호황인 셈이다. 우리 경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워낙 높은데, 호황으로 그 의존도는 더 커졌다. 호황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2023년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서 삼성전자는 이듬해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고, 2025년 납부액도 예년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런 취약점을 안고도 우리 경제의 반도체 의존은 2000년대 이후 바뀌지 않고 있다. 그사이 정부들이 추진해 온 경제정책 대부분이 실패했다는 의미다. 핵심은 제2의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산업군이나 특정 지역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인내 자본’을 형성하는 것이다. 스페이스X는 2002년 창업 후 20년 가까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간 뒤에야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그만큼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 자본을 국내 시장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인내 자본이 형성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해주고, 민간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다.”

―기금의 영속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내년도 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토대로 국가채무 스트레스 테스트를 직접 진행했다. 정부의 재정총량은 그대로 두고, 2027년 3분기부터 메모리 가격이 호황 이전 수준인 현재 가격의 30%로 되돌아간다고 가정했다. 이 경우 2028년부터 국세 수입이 줄고 미래대응기금은 2029년에 소진된다. 2030년 국가채무비율은 55.0%로, 같은 기준으로 계산한 충격 없는 경로(43.0%)보다 12.0%포인트 높고 정부 전망치(49.0%)보다도 크게 웃돈다. 가격이 이보다 더 떨어지고 수출 물량까지 줄면 56.6%, 여기에 금리가 2%포인트 더 오를 경우 57.5%까지 올라간다. 반도체 사이클에 따라 국가 재정상태가 널뛰는 것이다. 반도체 호황이 더 오래 지속될 것이란 시장의 기대도 있지만, 행운이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불행도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국가채무는 2019년 729조원에서 올해 1413조원으로 7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대응기금은 재정 충격의 흡수판이 아닌, 불안을 키우는 장치에 가깝다.”

김우철 한국재정학회장 세계초대석 인터뷰 /2026.10.20 남정탁 기자

―정부는 채권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국채 발행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채권 금리가 높다는 것은 단순하게 보면 시장에 채권이 공급 과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에 채권이 많아서 금리가 높은데, 그런 시장을 걱정해서 채권을 더 발행하겠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미 시장에선 레고랜드 사태를 겪으며 한 차례 충격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시장의 기준금리는 오르고 있었고, 채권이 과다하게 발행된 상태에서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며 신용경색을 겪었다. 이 사태로 한국은행이 이후 기준금리를 올리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국내 시장에서 정부와 기업의 채권 금리는 4% 안팎으로 높게 형성돼 있다. 국고채 조달금리가 4%라면, 1조원을 갚는 것이 해마다 400억원의 이자를 아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 안정을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는 것은 황당한 논리에 가깝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기조를 보이고 있는데, 여기에는 물가안정이란 목표도 있지만 자산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시각도 담겨 있다. 정부가 올해 63조원 규모의 초과세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발표했을 당시 시장에선 일시적이나마 채권 금리가 하락했다. 시장에선 초과 세수가 발생했으니 국채 발행을 줄이면서 금리가 내려갈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겠다는 기조를 이어가면서 최근에는 다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적극 재정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서로 상충한다는 지적도 크다.

“지금 상황은 한국은행이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데, 정부는 가속페달을 밟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본예산 대비 12.8%라는 지출증가율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경제는 이 정도로 체급이 성장한 뒤에 20%대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경험해 본 일이 없다. 이런 성장세에선 물가상승도 문제지만, 자산가격이 오르는 것도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국채로 조달한 돈을 지출 확대와 기금 예치로 다시 시장에 풀고 있다. 명목 성장률이 20%를 넘는 상황에서 이렇게 풀린 유동성은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으로 흐르기 쉽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려 자산가격을 누르려는 것과 정반대 방향이다. 더 나아가 적극재정과 기준금리 인상의 엇박자로 생긴 부작용은 추가적인 금리인상을 야기할 수도 있다. 금리가 올랐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기업이다. 자칫 레고랜드 사태와 같은 자금경색에 빠질 수 있다. 시장에 돈은 넘치는데 기업에는 돈이 흐르질 않는 것이다. 인공지능(AI) 투자가 버블일 수 있다는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텐데, 그때마다 우리 경제가 받는 충격은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이번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홀 교수는 금리와 재정정책에 관한 ‘뉴케인스주의’를 주장했다.

“금리가 어느 수준에 있는지에 따라 재정정책의 효과가 달라진다는 것이 로버트 홀 교수의 주장이다. 금리가 하한까지 내려갔을 때, 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선 재정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금리가 하한에 묶여 더 내릴 수 없었던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의 미국이나 장기 저금리 시기의 일본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대로 지금처럼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고 있을 때는 재정정책의 효과가 떨어진다. 금리가 시장을 누르려고 하는데, 정책으로 올리려고 하면 결과가 어떻겠느냐는 얘기다. 지금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김우철 한국재정학회장은…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경제학 학사·석사 ●예일대 경제학 박사 ●국회예산정책처 조세분석심의관·세수추계팀장 ●한국조세연구원 재정연구팀장·전문연구위원 ●한국예금보험공사 사외이사 ●서울시립대 세무학 교수 ●애경산업 사외이사 ●한국재정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