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춘렬 칼럼] 반도체 돈벼락, 재앙의 불씨 될 수도

‘삼전닉스’ 역대급 실적… 호황 질주
시장선 메모리 정점·AI거품 우려도
흥청망청하다가 축복이 저주 돌변
초격차·경제체질 개선 실기 안 돼

우리 경제가 지표만 보면 요즘처럼 좋은 적이 있었나 싶다. 올해 성장률이 4%를 넘보고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수출은 연말까지 세계 4번째로 1조달러 달성이 유력하고 경상수지 흑자규모도 경제 대국 독일과 일본을 합친 것(2분기 기준)보다 더 많다. 이게 다 반도체 돈벼락이 몰고 온 축복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역대 최대, 최고의 실적을 경신하며 호황 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세계에서 가장 많은 107조440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SK하이닉스도 83조원 영업이익을 기록, 100원어치를 팔아 80원 남기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증권가에서는 두 기업의 연간 합산 영업이익이 올해 600조원을 넘어서고 내년 1000조원 안팎에 이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까지 나온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메모리 수요가 폭증한 덕분인데 실력이라기보다는 운에 가깝다.

주춘렬 수석논설위원

행운은 도둑같이 찾아왔다가 사라진다고 했던가. ‘삼전닉스’가 역대급 실적에 향후 3년간 고대역폭메모리(HBM)·D램 등 주력제품도 ‘완판’됐다고 해도 주식시장은 싸늘하다. 두 기업의 주가는 고점 대비 거의 반 토막 났고 반도체 정점 우려도 좀처럼 가실 줄 모른다. 외국인들은 올해 코스피에서 200조원 넘게 순매도했는데 그중 두 기업의 비중이 90% 안팎에 이른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투자 격언을 곱씹어야 할 때다.



반도체 가격이 오를수록 그걸 써야 하는 다른 정보기술(IT)기업의 고통은 커진다. 당장 미국 빅테크업계조차 현금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3분기 실적에서 장사해 번 돈보다 쓴 돈이 많은(잉여현금흐름 적자) 기업이 속출하고 AI투자로 제대로 수익을 챙길 수 있는지 의구심도 번지고 있다. 지난 주말 구글 모기업 알파벳은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5000억달러가 날아갔다. 인텔의 주가도 메모리발 PC침체가 악재로 작용해 무려 30% 가까이 폭락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한국 메모리기업이) 터무니없는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독설을 퍼붓고 애플도 값싼 중국산 제품 구입에 공을 들이는 판이다. 미 정부가 자국 기업의 위기를 이대로 방치할 거 같지는 않다. 미국은 1980년대 일본이 세계 메모리시장을 장악하자 일본 내 외국산 비중확대와 대미 덤핑수출금지 등을 담은 반도체 협정까지 체결하지 않았나. 일본 반도체업계는 당시 PC시대 전환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놓고 수출통제나 가격·공급망 개입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의 추격도 매섭다. 창신메모리(CXMT)는 메모리 시장의 10% 안팎을 차지했고 고부가가치 제품 양산도 시작했다. 한·중 기술격차도 HBM 3년, D램 2년, 낸드플래시 1년 정도라고 한다. 얼마 전 최태원 SK 회장은 “가만히 놔두면 다 (중국에) 추격된다”고 했다. 한국 반도체가 미·중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이번 반도체 축제도 재앙의 불씨가 될 수 있다. 과거 메모리는 4∼5년마다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왔다. AI 시대를 맞아 그 주기가 길어진다지만 가격 상승세가 마냥 지속하기는 힘들다. 반도체 호황이 꺾이면 경제 전체가 급전직하할 수 있다. 지금도 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다른 산업은 부진의 늪에 빠져있고 내수와 고용도 냉기가 가득하다.

거안사위(居安思危·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한다)라는 말이 있다. 반도체 호황은 경제체질을 바꾸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발등의 불은 선제 투자와 증설로 초격차 우위를 유지하고 중국의 공세도 막아내는 것이다. 시스템반도체·로봇·바이오 등 미래 성장동력을 키워 산업 다변화도 속도를 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경쟁국에 뒤처지지 않도록 정책과 규제를 친기업·친시장 위주로 바로잡고 인재양성과 전력 등 인프라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업을 옥죄는 낡은 이념에 갇혀 ‘황금알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