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남정훈 기자] 어쨌든 우규민(KT)과 강민호(삼성) 중 하나는 무조건 이번에 생애 첫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낀다.
우규민과 강민호는 KBO리그에 몇 남지 않은 불혹을 넘긴 사나이들이다. 올해까지 현역으로 뛴 선수 중 불혹을 넘긴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타자 최고령은 최형우(삼성), 투수 최고령은 노경은(SSG)다. 여기에 우규민과 강민호, 김진성(LG), 전준우(롯데)까지 총 6명이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여기에서 우규민과 강민호, 전준우만이 한국시리즈 반지가 없다. 최형우는 삼성과 KIA에서 총 6개의 우승 반지를 수집했고, 노경은은 두산 시절인 2015년, 김진성은 NC에서 2020년에, LG에서 2023년과 2025년 우승 반지를 꼈다.
건국대를 졸업하고 2008년 KBO리그에 데뷔해 쭉 롯데에서 뛴 전준우는 올해도 우승반지는커녕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는 데 실패했다. 우규민이 올해 처음 한국시리즈 마운드를 밟을 기회가 생기면서 이제는 전준우가 한국시리즈를 밟아보지 못한 최고령 선수로 남게 됐다.
2026 KBO 포스트시즌의 대미를 장식하는 한국시리즈가 정규리그 1위 KT와 2위 삼성의 맞대결로 성사되면서 우규민과 강민호 둘 중 하나는 20년 이상된 오랜 숙원인 한국시리즈 우승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우규민과 강민호는 둘 다 1985년생이다. 다만 1월생인 우규민이 1년 선배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2003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 19순위로 LG의 지명을 받은 우규민은 2016년까지 LG에서 뛰었다. LG가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다시 그 무대에 오른 게 2023년이니 우규민은 LG에서 한국시리즈를 뛸 일이 없었다. 2017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이적한 우규민은 2023년까지 삼성에서 뛰었다. 그러나 그때도 우규민은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사상 초유의 통합우승 4연패를 달성하며 ‘왕조’를 열었던 삼성은 2015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오랜 암흑기를 겪었다 2021년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며 다시 가을야구 무대에 복귀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업셋을 당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엔 실패했다. 우규민은 2024시즌을 앞두고 KT로 이적했는데, 공교롭게도 삼성은 2024시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이래저래 우규민에게 한국시리즈는 영원히 밟을 수 없는 영역처럼 보였다.
그러나 KT가 올해 전반기를 3위로 마쳤으나 후반기에 기세를 타며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드디어 우규민도 한국시리즈 마운드를 밟을 수 있게 됐다. KT의 한국시리즈 직행이 확정되던 순간, 우규민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간절하게 바래왔다는 얘기다.
우규민이 한국시리즈가 첫 경험인 반면, 강민호는 이미 한 번 뛰어봤다. 물론 강민호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2004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 17순위로 롯데의 지명을 받은 강민호는 이대호와 함께 롯데를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활약했다. 그러나 2018시즌을 앞두고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은 강민호는 삼성으로 둥지를 옮겼지만, 그땐 삼성의 암흑시 시절이었다. 결국 2년 전인 2024년, 프로 데뷔 20년 만에 강민호는 그토록 바래왔던 한국시리즈 무대를 처음으로 밟을 수 있었다.
한때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지만, 이제는 서로를 넘어서야만 생애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버렸다. 둘의 오랜 숙원이 야구계에서도 워낙 화제다 보니 2일 수원 라마다프라자호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는 KT 이강철 감독과 삼성 박진만 감독을 향해 우승이 너무나 간절한 상대팀 베테랑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KT 이강철 감독은 강민호에게 “평상시에 인사도 자주한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강민호를 참 좋아한다. 그래도 민호야, 너는 한국시리즈 한 번 해봤잖니. 우승은 다음 기회에 하자. 우리도 우승해야 되거든. 미안해”라며 웃었다. 이에 삼성 박진만 감독도 “(우)규민이는 저희 팀에도 같이 있었던 선수다. 제가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가 6개니까 하나를 규민이에게 주겠다. 올해는 민호가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겠다”라고 선전포고를 날렸다.
삼성과 KT의 안방마님인 강민호와 장성우는 롯데 시절 주전-백업 포수로 함께 했던 사이다. 장성우도 2008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롯데의 유니폼을 입은 유망주였지만, 4년 선배인 강민호의 그늘에 가려 백업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렇게 2015시즌 초반까지 롯데 유니폼을 입었던 장성우는 그해 5월, 창단 후 처음 1군 무대에 오른 KT가 포수가 필요해지면서 롯데와의 4대5 트레이드 때 KT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그때 트레이드의 주요 퍼즐이 장성우와 현재 롯데의 토종 에이스를 맡고 있는 박세웅이었다. 2015년부터 KT 유니폼을 입고 있는 장성우는 이미 2021년 KT의 통합우승 때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꼈다.
강민호와 장성우 간의 관계를 의식한 질문도 나왔다. “시즌 도중에도 민호 형과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안그래도 미디어데이가 열리는 이 호텔에 삼성 선수단이 묵고 있어 민호 형과 잠시 만났다. ‘한 번만 봐달라’라고 하던데, 승부의 세계에는 그런 건 없다. 저는 반지가 있지만, 봐주고 그런 건 없다. 미안하지만, 민호 형은 이번에도 반지를 끼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