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 10명 중 7명가량이 재판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이 만든 가짜 판례 등이 담긴 서면을 받아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거나 AI로 만든 가짜 판결서를 제출한 사례도 확인됐다.
2일 대법원이 공개한 법원행정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6일부터 16일까지 각급 법원 법관 3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43명(67.5%)이 허위·부존재 판례 등이 인용된 사례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민사·가사·행정 담당 법관 중에서는 약 80%가 이같이 답했다.
허위 인용 유형별로는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인용한 경우가 196명(80.7%)으로 가장 많았다. 실제 판시 내용을 바꾸거나 판결 취지와 다르게 인용한 경우가 159명(65.4%), 허위·부존재 법령 인용 41명(16.9%), 논문·문헌 등 가짜 자료 인용 10명(4.1%) 순이었다. 복수 응답 결과다.
구체적으로는 대법원 판결서 형식을 그대로 본떠 AI로 만든 가짜 판결서를 제출한 사례가 있었다. 처음 보는 법리와 함께 대법원 사건번호를 기재했지만 해당 판례가 검색되지 않거나, AI와 나눈 대화 내용과 소송 전략 관련 문구가 서면에 그대로 담긴 경우도 있었다.
가짜 판례 등을 인용한 주체는 사건 당사자 본인이 164명(69.5%)으로 가장 많았다. 변호사 등 소송대리인이나 변호인이 인용한 사례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136명(57.6%)에 달했다.
법원행정처는 이 같은 허위 인용으로 소송 상대방이 판례의 존재 여부와 정확성을 확인하고 반박하는 데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변호사 없이 직접 소송을 진행하는 당사자는 허위 인용을 가려내기 어렵고, 재판도 지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91.7%는 AI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과태료 부과 근거 마련(61.4%), 인용 판례 검증 의무화(61.1%), AI 활용 사실 기재 의무화(60.6%), 변호사 징계의뢰 등 제재방안 마련(55.4%)이 제시됐다.
법원행정처는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과태료 부과 근거 마련을 위해 법무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하고 국회에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다. 전자소송 사이트에 ‘AI 활용 시 유의사항’을 안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