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축복을 받으면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고생을 할 겁니다. 왜냐하면 목회를 계속할 것이니까요.” 결혼을 앞둔 문인성이 권연옥에게 건넨 말이다. 좋은 집이나 편안한 생활을 약속하지 않았다. 권연옥은 그 말에서 자신이 바라던 배우자의 모습을 보았다. 고생길을 자진해서 가는 사람. 가정연합 원로 부부의 증언에서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이다.
문인성은 1934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전도관에서 12년간 목회했고, 강원 양구에서는 학교와 판매점 운영도 맡았다. 새벽이면 다른 교회보다 먼저 종을 쳐야 그날의 책임을 다한 듯 여겼다. 자신의 믿음에 그만큼 열심이었지만, ‘사람이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가르침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이후 서울에서 통일교회 교리를 접하고, 1968년 9월 초 양구통일교회 황대성 목사를 찾아가 의문을 풀기 위해 대화했다. 황 목사는 서로의 교리를 듣고 옳다고 여기는 쪽으로 개종해 보자고 제안했다. 서로의 교회를 오가던 중, 문인성은 황 목사의 부활론 강의를 듣고 오랜 의문이 풀렸다고 회고했다. 방바닥을 치며 기뻐할 만큼 깊은 깨달음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눈물로 기도했다. 이어 서울에서 40일 수련을 받고 입교를 결심했다. 쌓아놓은 자리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게 된 가르침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대가는 컸다. 전도관 새벽 예배에서 통일교회에도 진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뒤 파면됐다고 한다. 갈 곳이 없어 황 목사가 있는 교회로 짐을 옮겼다. 옛 동료들의 냉대와 수모도 겪었다. 그러나 새 신앙을 만난 기쁨이 상실감보다 컸다고 회고했다. 오래 지켜온 믿음을 되짚으며 삶의 방향까지 바꾼 결단이었다.
권연옥은 1946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965년 문경교회에 입교했다. 배우자를 맞을 때도 학력이나 조건보다 믿음과 삶의 자세를 먼저 보려 했다. 막상 문인성을 소개받았을 때는 당황했다. 나이 차이도 있었고 낯선 고장 출신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세운 약속을 돌아봤다. 두 사람은 1970년 777가정 합동결혼식에서 부부가 됐다.
결혼한 그해 겨울, 권연옥은 3년 전도활동을 위해 군산으로 향했다. 대야면에서 학생의 집에 머물며 가족과 가까워져 빌린 방에서 말씀을 전했다. 면장이 회관을 빌려주기도 했다. 낯설던 마을 사람들도 만남을 거듭하며 점차 정다운 이웃이 됐다. 군산교도소를 찾아 예배를 드리는 활동에도 참여했다. 담장 안의 사람들에게도 신앙으로 다시 살아갈 길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부부의 목회는 철원, 북전주 등을 거쳐 해외로 이어졌다. 아프리카 남부의 소국 스와질랜드(현 에스와티니) 선교사로 발령받았을 때, 권연옥은 남편에게서 먼저 떠나라는 말을 들었다. 외국어도 못 하고 길도 몰랐다. 남편은 먼저 가 있으면 뒤따라가겠다고 했다. 출국일은 공교롭게도 결혼기념일이었다.
공항에서 남편과 자녀들을 뒤로하고 비행기에 오른 그는 하염없이 울었다. 기대어 살던 모든 것을 두고 떠나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붙잡았다. 환승 공항과 입국 때 받은 동포들의 도움을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받아들였다. 두려운 가운데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길을 걸었다.
선교지에 도착하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흑인 주민들과 황막한 들이었다. 그러나 이 나라를 누구보다 사랑하겠다고, 사람도 자연도 공기까지도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낯선 땅을 견뎌야 할 임지로만 여기지 않았다. 이곳 역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받아들였다. 조국에서 멀어진 만큼 사랑해야 할 이웃의 범위는 더 넓어졌다.
그 사랑은 현지인과 여러 나라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일본 선교사들은 학교를 찾아 학생들의 학비와 교복, 공책을 지원했다. 권연옥은 이들의 수고와 일본 교회의 후원에 감사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배움을 돕고 학교와 관계를 쌓아갔다. 한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 신자들이 아프리카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손을 보탠 것이다. 문인성도 합류해 15년 넘게 함께 헌신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권연옥은 그의 기록장을 정리하다 이루지 못한 계획들을 발견했다. 육영사업, 장학기금 조성, 다음 세대 교육이 적혀 있었다. 그의 눈길은 남편이 더 하고 싶었던 일에 머물렀다. 자신의 고생보다 함께 품었던 뜻이 기억났다. 권연옥의 증언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고백이 되풀이된다. 누군가에겐 우연일 만남도 그에겐 다시 일어설 힘이 됐다. 그 믿음이 가족과 동료, 선교지 사람들을 향한 정성을 지탱해 줬다.
이들의 증언에는 신앙이 삶을 이끌던 시간이 담겨 있다. 믿는 바를 위해 자리를 내려놓고, 맡은 곳에서 사람을 만나며, 낯선 나라의 아이들을 걱정했다. 국적이나 종교가 달라도 그 책임감과 정성에는 공감할 수 있다. 무엇을 얻을지 따지기 쉬운 세상에서 두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지 살아온 날들로 답했다.
믿음의 깊이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드러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맡은 일을 다하고, 멀리 있는 사람의 삶을 내 일처럼 품는 마음이다. 문인성·권연옥 부부가 걸어온 길은 오늘 우리에게도 조용히 묻는다. 우리가 나눠야 할 사랑은 어디까지 가 닿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