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63만정으로 필로폰 1.36㎏ 제조… 한약사가 원료 댔다

감기약 이용 제조 중 최대 압수량
한약사, 제조 알고도 6차례 판매
일당 등 13명 검거·4명 구속
경찰, 식약처에 전문약 전환 요청

감기약 성분을 추출해 필로폰을 대량 제조한 일당과 원료를 공급한 한약사 등 13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제조 총책 A씨 등 13명을 검거했다고 3일 밝혔다. 이 중 4명은 구속했다. 

 

검거 인원은 제조 5명(구속 3명), 방조 3명(구속 1명), 원료 판매 3명, 약국 업주 2명이다.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 서울경찰청 제공

A씨 등 5명은 2025년 4월부터 2026년 6월까지 경기 평택의 한 아파트에서 필로폰 약 1.36㎏을 제조한 혐의를 받는다. 감기약의 슈도에페드린 성분을 추출한 뒤 황산·염산 등과 섞어 가공했다. 슈도에페드린은 코막힘 완화 약물로, 코 점막 교감 신경 수용체에 작용해 혈관을 수축시키며 감기, 상기도 알레르기 증상에 쓰인다. 이 성분이 든 감기약은 필로폰 제조 원료로 악용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다. 

 

경찰은 필로폰 1.36㎏과 슈도에페드린 635g, 제조 도구와 유해화학물질을 압수했다. 압수한 필로폰은 약 42억원어치로, 4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감기약으로 만든 국내 사례 중 최대 규모라는 설명이다. 경찰은 범죄수익 1억3000만원도 환수했다.

 

A씨는 수감 생활 중 알게 된 사람들을 공범으로 모았다. 범행 장소로는 유치권 분쟁으로 장기간 비어 있던 아파트를 골랐다. CC(폐쇄회로)TV와 주차 차단기로 외부인 출입을 감시했다.

 

일당은 2025년 4~9월 시험 제조를 반복했다. 처음 섭외한 기술자가 제조에 실패하자, 과거 감기약으로 필로폰을 만든 경험이 있는 기술자로 바꿨다. 경기 파주에는 제조 도구와 화공약품을 보관할 창고를 따로 마련했다. 해외 논문과 과학실험 영상, 유사 범죄 판결문도 참고했다.

 

필로폰 제조 현장. 서울경찰청 제공

이들은 2025년 10월쯤 본격 제조에 착수해 약 8개월간 범행을 이어갔다.

 

원료 공급책도 붙잡았다. 한약사 B씨는 2026년 1~6월 A씨의 필로폰 제조 사실을 알면서도 6차례에 걸쳐 감기약 1만610통(63만6600정)을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약국이 아닌 자신이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의약품을 판 혐의도 있다. 

 

경찰은 B씨가 감기약 판매로 얻은 범죄수익 9500만원을 기소 전 추징보전으로 전액 환수했다.

 

C씨 등 2명은 A씨 지시로 B씨에게서 감기약을 대리 수령해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B씨 동료인 약국 실장 D씨는 2025년 11월~2026년 1월 약사 자격 없이 A씨에게 감기약을 판매한 혐의다. 화공약품 판매업자 E씨 등 2명은 2025년 10월~2026년 5월 A씨에게 황산·염산을 팔고도 관리대장에 기록하지 않은 혐의다. 

 

약국 업주 F씨 등 2명은 B씨와 D씨의 불법 판매에 대한 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송치됐다.

 

경찰은 B씨 수사 과정에서 약국 2곳과 의약품 도매업체 간 무자료 거래를 통한 세금 포탈 정황을 확인하고 관련자 모두를 국세청에 고발 의뢰했다. A씨에게 감기약을 대량·반복 판매한 다른 약사 2명에 대해서는 관할 행정기관에 처분을 의뢰했다. 

 

범행에 쓰인 슈도에페드린 함유 감기약 용기. 서울경찰청 제공

이번 수사는 지난해 12월 제보로 시작됐다. 경찰은 잠복·채증·압수수색 끝에 2026년 6월 제조 피의자들을 검거했다. 이후 통신수사와 디지털 포렌식으로 관련자 전원을 붙잡았다. 

 

슈도에페드린 함유 감기약은 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판매량 제한, 구입 목적 확인 등 관리 방안을 시행 중이다. 

 

경찰은 현행 체계만으로는 마약 제조 악용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식약처에 해당 감기약의 전문의약품 전환 지정 등 제도 개선을 공식 요청했다. 대한약사회에는 판매 시 주의사항 안내 강화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