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속 출판계 ‘믿소’ 한국소설

전문시리즈·계간지 앞다퉈 선보여

해외문학 전문 열린책들 ‘결정서가’ 시작
단편 소설· 작가의 창작노트 한권에 담아
이승우 ‘뒷면’ 시작… 박지영·이유리 등 참여

열림원 문학웹진 ‘림’·김영사 ‘올-타임’ 눈길
한국소설 발랄한 가능성에서 해답 찾아

국내 주요 출판사들이 한국소설 출판을 확대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소설 전문 시리즈를 선보이거나 소설 전문 계간지를 창간하는 등 관련 사업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3일 열린책들은 한국문학 시리즈 ‘결정서가’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한 작가의 세계가 짙게 응축된 단편소설 한 편을 한 권에 담는 시리즈다. 짧은 분량 안에 작가가 오랫동안 품어 온 질문을 밀도 있게 담아낸다는 취지다. 첫 책은 이승우의 ‘뒷면’. 이어 박지영·이유리의 책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60대 이승우부터 30대 이유리까지, 원로부터 중견·신진 작가까지 두루 아우른다. 현재까지 작가 20명과 계약을 마쳤다.

‘결정서가’ 출범은 해외문학 전문 출판사로 독자들에게 각인된 열린책들이 한국문학으로 출판 영역을 넓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러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로 출발한 열린책들은 도스토옙스키와 움베르토 에코,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다. 강대건 열린책들 기획팀장은 “그동안 세계 곳곳의 문학을 우리말로 옮겨 오는 일을 해 왔다면, 이제는 우리 문학을 같은 자리에 세워 보려 했다”고 말했다.

 

대동소이한 한국문학 시리즈가 잇따라 출간됨에 따라 각 출판사의 기획 차별화도 관건이다. 결정서가는 단편소설뿐 아니라 작가가 해당 작품에 관해 직접 쓴 글을 함께 싣는다. 작품에 대한 산문이나 완성된 소설의 초기 버전 원고를 수록하는 식이다. 강 팀장은 “한 편의 소설과 그 뒷이야기를 한 권에서 함께 만나는 경험이 이 시리즈만의 색깔”이라고 말했다.

계간 '문학림' 창간호

열림원도 최근 몇 년 사이 소설 출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학웹진 ‘림(LIM)’을 통해 젊은 작가들에게 작품 발표 기회를 제공해 온 데 이어, 2023년에는 앤솔러지 시리즈 ‘림 젊은 작가 단편집’을 시작했다. 지난 9월에는 소설가 조경란·염승숙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소설 전문 계간지 ‘문학림’ 창간호(2026 가을호)를 펴냈다. 윤성희·구병모·정용준·이주혜 등 문단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작가들이 대거 작품을 발표했다. 계간지 창간과 함께 ‘문학림 신인문학상’도 제정해 작가 발굴에도 나선다. 정진우 열림원 기획실장은 “창간호 출간 후 소설에 집중한 구성이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고, 판매도 긍정적이었다”며 “겨울호 역시 기존 구성과 편집 방향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린 소설 ‘천 개의 웃음과 눈물의 낙원’

종합 단행본 출판사 김영사도 앞서 7월 한국소설 시리즈 ‘올-타임’을 내놓았다. 첫 책은 전경린의 ‘천 개의 웃음과 눈물의 낙원’으로, 단편소설 한 편을 작은 판형에 담았다.

이승우 소설 '뒷면'

출판사들이 한국소설에 눈을 돌리는 것은 출판시장이 침체한 가운데 소설이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픽션은 판매가 크게 부진하고, 에세이도 예전만큼 팔리지 않는 가운데 그나마 독자들의 꾸준한 선택을 받는 분야가 소설, 특히 한국소설이라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출판업계에서는 “기대할 곳은 소설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른 한국소설은 2024∼2025년 모두 5종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1~5월)에도 5종이 이름을 올렸다. 2024년에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흰’ 등 기존 작품이 판매량 강세를 보였다. 지난해부터는 성해나의 ‘혼모노’,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 한로로의 ‘자몽살구클럽’ 등 신작이 선전하는 한편, 양귀자의 ‘모순’처럼 1990년대 말 출간된 소설이 다시 독자의 선택을 받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