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4시30분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 비대면상담부 유선상담팀. 상담원 정수랑 대리와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김은경 서금원장이 헤드셋을 쓴 채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상대는 현장 대면 창구인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가 없는 경상권의 한 지역에 거주하는 60대 A씨다. 과거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일했으나 생각지 못한 일로 형편이 어려워져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고 있다. 당장 치과 치료가 시급해 식사조차 불편한 처지지만 치료비와 생활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해지자, 100만원이라도 대출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햇살론 특례보증’ 유선종합상담을 예약했다.
◆‘간편인증’ 벽 넘은 80분의 동행
이날 상담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비대면으로 대출 자격을 조회하고 약정서를 쓰려면 세 차례의 스마트폰 간편인증과 신분증 촬영을 거쳐야 한다. 이름만 ‘간편인증’일 뿐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의 A씨에게 모바일 화면 조작은 거대한 벽이었다. 특히 휴대전화 안에서 여러 화면을 오가는 과정이 난관이었다. 정 대리가 문자로 보낸 인터넷주소(URL)를 눌러 인증을 요청한 뒤 카카오톡 앱으로 이동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다시 원래의 대출 신청 화면으로 돌아와 완료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A씨는 한 번 넘어간 화면에서 되돌아오는 길을 거듭 잃었다.
상담원은 A씨가 화면을 전환할 수 있도록 “휴대전화 맨 밑바닥에서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살짝 위로 쓸어올려 보라”고 안내했다. 화면 하단에 나타나는 동그라미 홈버튼과 왼쪽의 ‘작대기 세 개’(최근 실행 앱 버튼)를 눌러 기존에 열어둔 창을 찾거나, 엉켜버린 화면을 모두 닫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정 대리는 스마트폰 진행 화면을 단계별로 인쇄해 둔 종이를 짚어가며 파란색 버튼, 노란색 버튼, 편지봉투 모양 문자 아이콘 등 눈에 보이는 색상과 모양으로 화면을 묘사했다. 김 원장도 중간중간 마이크를 잡고 어르신들이 헷갈리기 쉬운 버튼 위치나 과거 가입해 둔 보장성 보험의 납입 유예·부활 제도를 설명하며 상담을 도왔다.
인증 실패가 수차례 반복되자 수화기 너머 A씨의 목소리는 점점 무거워졌다. 자신의 서툰 조작 탓에 직원들의 시간을 뺏는다는 미안함에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화면 공유나 원격 제어 프로그램을 쓰면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실제 자금이 오가는 대출 약정 절차 특성상 해킹 등 금융사고 위험이 커 상담사가 구두로 안내할 수밖에 없다. 직접 센터를 방문하는 편이 빠를 수도 있으나 A씨처럼 근처에 센터가 없는 지방 거주자나 거동이 불편한 취약계층에게는 이 전화 한 통이 유일한 창구다. 정 대리는 젊은 사람들도 자주 헤매는 절차라며 A씨를 다독였고, 이어진 신분증 촬영 단계까지 차근차근 안내해 무사히 본인 확인을 마쳤다.
상담 시작 1시간 만인 오후 5시30분쯤, 정 대리의 모니터에 ‘조회 가능’이라는 문구가 뜨자 정 대리와 김 원장은 동시에 손뼉을 치며 탄성을 내뱉었다. 최종 심사 결과 A씨에게는 한도 300만원, 상환기간 5년의 대출이 승인됐다. 오후 5시50분 마지막 약정서 전자서명까지 끝나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안도감에 살짝 북받친 듯한 A씨의 감사 인사가 전해졌다. 약 80분간 이어진 상담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디지털 소외·오지 잇는 ‘통하다’
최근 금융권 전반은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앞세워 콜센터 인력을 인공지능(AI) 챗봇으로 대체하고 통화 시간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반면 서금원은 정반대 행보를 택했다. 9월 도입한 유선종합상담 ‘서민금융 통하다’는 한 사람의 문제를 끝까지 듣고 해법을 제시한다는 원칙 아래 대면 창구와 동일한 수준의 심층 상담을 전화로 제공한다. ‘통하다’라는 이름에는 전화로 ‘통화하다’라는 뜻과 서민의 고충에 ‘마음이 통하다’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기존 ‘1397 서민금융콜센터’는 금융상품 단순 알선만 가능했다. 실제 대출을 신청하거나 복합지원을 받으려면 ‘서민금융 잇다’ 앱을 쓰거나 전국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직접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정책서민금융 수요가 늘면서 콜센터 상담 건수는 2021년 108만7000건에서 지난해 293만2000건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앱 사용이 미숙한 고령층이나 센터가 없는 오지 거주자, 생업으로 자리를 비우기 힘든 영세 자영업자들이 상담 사각지대에 놓이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서금원은 전산과 업무 절차를 손질해 7명의 유선종합상담 전담 인력을 배치했다. 센터를 방문하지 않아도 전화로 햇살론 특례보증, 불법사금융예방대출 등 주요 정책서민금융 상품의 상담과 신청, 보증 약정, 채무조정·복지·취업 연계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바꿨다. 서금원은 이를 통해 연간 약 2만2000명의 서민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오프라인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8곳을 새로 여는 것과 맞먹는 규모다.
도입 초기 성과에서도 취약계층 포용 효과가 나타난다. 서금원이 9월 1∼14일 사이 ‘서민금융 통하다’ 이용객 215명을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 중장년·고령층(38.1%)과 중증장애·질병 입원자(10.0%) 등 물리적 이동이나 앱 활용이 어려운 계층이 전체의 48.1%를 차지했다. 거주지별로는 여수·완도·통영 등 센터 미설치 지역을 포함한 지방권역 고객이 70.2%에 달해 지역 간 금융 접근성 격차를 메웠다.
배달라이더 등 프리랜서(11.6%)와 자영업자(13.7%)처럼 평일 낮 시간대 이동이 어려운 생계형 고객 비중도 25.3%였다. 서금원은 이들을 위해 정규 업무시간 전인 오전 8∼9시에 운영하는 ‘샛별상담’, 의료비 등 당일 급전이 필요한 위기자를 즉시 연결하는 ‘바로상담’, 고객이 원하는 시간대에 전화를 걸어주는 ‘예약상담’ 등으로 창구를 나눴다. 내담자의 사연을 깊이 있게 듣다 보니 평균 통화 시간은 19분으로 일반 1397 콜센터 평균(3분20초)의 6배에 달한다. 30분 이상 장시간 통화가 이뤄진 비율도 10.5%를 기록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사람 살리는 금융’
현장 직원들은 유선종합상담이 단순한 대출 심사 창구가 아니라 서민들의 일상을 지탱하는 안전망 역할을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날 80분간 상담을 진행한 정수랑 대리는 일반 콜센터와 달리 고객이 직접 인증과 약정을 마칠 때까지 끝까지 기다려줄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차이로 꼽았다. 정 대리는 “고객의 절박한 처지를 알기에 승인 결과를 함께 확인했을 때 느끼는 보람과 뿌듯함이 크다”고 말했다.
밀착형 상담은 현장의 제도적 허점을 찾아내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날 상담에서도 생계·의료급여를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이유로 A씨에 대한 국민취업지원제도 연계가 전산상 자동 거절되는 사각지대가 확인됐다. 김 원장은 이를 두고 “수급자라도 근로 의지가 있다면 일자리를 연계해 자립을 돕는 것이 맞는다”며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문제인 만큼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경제 양극화가 심화할수록 서민금융의 대면·밀착형 기능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식 시장 활황이나 반도체 호황으로 대규모 이익과 상여금이 풀리며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 압력을 자극하고, 그 여파가 하방에 있는 서민들에게는 훨씬 무거운 고통으로 내려앉고 있다”며 “서민금융이 다루는 자금은 단순한 대출금이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돈”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것이 AI와 챗봇으로 대체되는 시대라지만 사람이 사람의 사연을 읽고 보듬는 역할은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만큼 관련 인력과 인프라가 더욱 늘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불법사금융 피해에 노출된 경우 금융감독원(☎1332)에 신고하여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과다채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 서민금융진흥원(☎1397) 또는 신용회복위원회(☎1375)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연이율 60% 초과 대부계약은 원금과 이자 모두 무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