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전경철 작가가 쓴 두번째 책 치매 앓다 떠난 어머니 이야기 출판 경력 20년 베테랑 편집자 “책 만들면서 몰랐던 세상 만나”
“표지를 하늘색으로 만들었어요. 하늘로 책을 보내드리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출판사 이야기장수의 이연실 대표는 최근 출간한 ‘피터팬 아빠’ 고(故) 전경철 작가의 유고집 ‘안녕, 엄니’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맑은 하늘 같은 푸른색 표지에는 중증 자폐인 아들과 함께 해맑게 웃고 있는 전 작가의 생전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가 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고(故) 전경철 작가의 유고집 ‘안녕, 엄니’를 소개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지난달 세상을 떠난 전 작가는 생전 이 대표에게 두 권의 책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첫 번째는 중증 자폐인 아들 제원씨와 자신의 삶을 담은 ‘안녕, 피터팬’, 두 번째는 치매를 앓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대표는 “작가님이 생전에 그토록 바라셨던 책을 결국 작가님 없이 만들게 됐다”며 “편집하는 내내 작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전 작가가 출간을 믿고 맡겼던 이 대표는 출판계에서 약 20년을 보낸 베테랑 편집자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문학동네에 입사했다. 처음부터 편집자가 꿈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이 대표는 “원래는 작가가 꿈이었다. 그런데 대학 4학년이 되니까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넌 작가가 될 깜냥이 안 되니 출판사에 가서 작가들 심부름이나 해’라는 마음으로 입사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입사 한 달 만에 그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책을 만드는 일이 책을 쓰는 것만큼 가치 있고 재밌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편집자의 역할을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했다.
이 대표는 “편집자는 작가, 디자이너, 홍보팀 등 모든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한 권의 책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며 “할머니가 돼서도 편집자로 늙고 싶었다”며 웃었다.
편집자로서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발달장애인 화가 정은혜 작가의 책을 만들면서는 장애인 당사자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봤고, 전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중증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현실을 배웠다.
이 대표는 “책을 만들지 않았다면 저는 그분들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멀리서 볼 때는 편견을 가질 수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런 이 대표에게도 전 작가와의 만남은 각별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 6월 출간된 ‘안녕, 피터팬’에서 시작됐다. 당시 전 작가는 여러 출판사 가운데 이야기장수를 택했다. 450쪽이 넘는 분량을 한 달 안에 출판해 달라는 어려운 조건을 이 대표가 수락했기 때문이다.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전 작가의 상황을 이해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망설였다. 그런데 작가님이 ‘저는 책을 위해 시키는 거는 다 하겠다. 이 책이 피터팬재단을 세우는 데 무기가 될 거다’라고 하니 왠지 모를 의무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밤낮없이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원고를 다듬었다. 전 작가는 말기 암 투병 중에도 방송과 강연, 북토크에 참석하며 재단 설립의 필요성을 알렸다.
이 같은 두 사람의 노력 덕에 ‘안녕, 피터팬’은 누적 발행 부수 5만부를 기록했고, 에세이 부문 베스트셀러 자리를 9주간 지키는 기염을 토했다.
첫 책의 성공 이후 이 대표는 전 작가와 나눴던 또 하나의 약속을 지켰다. 바로 전 작가 어머니의 삶을 담은 ‘안녕, 엄니’의 출간이다.
책 제목도 전 작가가 직접 지었다. ‘엄니’라는 두 글자에는 작가의 삶 전체가 녹아 있다. 이 대표는 “작가님은 실제로 어머니를 ‘엄니’라고 부르셨다”며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인사이면서 이제는 하늘에서 다시 만나는 인사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집안에서는 작가님이 끊임없이 어머니였다고 생각한다. 직접 요리하고 청소하고 목욕시키며 어머니와 아들을 돌봤다”며 “두 사람의 어머니로 살아야 했던 작가님의 삶도 담겨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다.
책 판매에 따른 인세는 전 작가가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추진했던 피터팬재단에 전달되며 출판사 역시 수익금 일부를 보탠다.
이 대표는 ‘안녕, 엄니’가 세상 사람들이 전 작가를 기억하고 피터팬 재단을 여는 통로가 되길 바랐다. 그는 “작가님이 믿었던 것처럼 이 세상이 따뜻하다는 걸 우리가 계속 보여드렸으면 좋겠다”며 “책을 구매하는 것 자체가 재단을 돕는 일이다. 작가님이 꿈꾸셨던 ‘피터팬의 네버랜드’가 전국 곳곳에 생길 때까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