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224㎝ ‘외계인’이 소림사에 들어간 이유…스님들 틈에서 찾은 것

NBA 최정상 빅터 웸반야마, 혈전 딛고 소림사 수련
머리 깎고 새벽 4시 반 기상…“왜 그냥 앉아 있죠?”
‘세계에서 가장 키 큰 승려’의 탄생. 빅터 웸반야마가 지난해 6월 중국 허난성 소림사에서 옌안 스님에게 머리를 맡기고 있다. 웸반야마는 이곳에서 열흘간 승려들과 먹고 자며 수련했다. 웸반야마 SNS 캡처

 

중국 허난성 쑹산 자락의 소림사. 승려들이 자는 방의 침대는 폭 120㎝, 길이는 길어야 190㎝다. 지난해 6월 이곳을 찾은 손님의 키는 224㎝. 눕기만 해도 다리가 침대 밖으로 한 뼘 넘게 삐져나온다.

 

소림사행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지만 소문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도착하던 날 사원 앞에는 휴대전화를 든 팬 수백 명이 몰렸다.

 

머리를 밀고 승복을 입은 채 불상 앞에 앉은 사진이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퍼지자 전 세계가 술렁였다. 미국 CNN은 ‘세계에서 가장 키 큰 승려?’라는 제목까지 달았다.

 

승복을 벗으면 미국프로농구(NBA)의 슈퍼스타가 된다. ‘외계인’이라 불리는 빅터 웸반야마(22)다.

 

농구장에 나타난 외계인

 

‘외계인’의 고향은 프랑스 파리 근교의 작은 도시 르셰네다. 2004년 이곳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큰 키는 부모를 닮았다. 아버지 펠릭스 웸반야마(196㎝)는 콩고 대표 육상 선수였고 어머니 엘로디 드 포트로(188㎝)는 프랑스 농구 국가대표 출신이다. 농구는 유소년 코치로 일하던 어머니에게 배웠고 202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NBA에 들어왔다. 

 

‘외계인’이라는 별명은 르브론 제임스가 붙였다. 202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범경기에서 웸반야마를 지켜본 르브론이 “지난 몇 년 동안 모두가 유니콘이었다. 웸반야마는 외계인에 더 가깝다”고 한 게 시작이었다. 키 크고 슛까지 잘 쏘는 선수에게 흔히 붙던 ‘유니콘’으로는 모자란다는 뜻이었다.

 

웸반야마도 “이 세상 것이 아니라서 좋다”며 반겼다.

 

별명은 기록으로 증명됐다. NBA 2년 차에는 단 26분 만에 50점을 몰아넣어 리그 역대 최단 시간 기록을 세웠다. 지난 시즌엔 역대 최연소로 ‘올해의 수비수’에 뽑혔고 올 시즌엔 MVP 후보로 꼽힌다.

 

 

‘少林寺(소림사)’가 새겨진 검은 티셔츠를 입은 웸반야마가 지난해 6월 소림사에서 체력 코치와 함께 소림 무술 기본 권법을 익히고 있다. 웸반야마 SNS 캡처

 

혈전에 멈춘 시즌…소림사에서 보낸 열흘

 

거침없던 외계인의 시간이 멈춘 건 지난해 2월이었다. 3m 높이 골대를 어린이용처럼 다루던 웸반야마도 뜻밖의 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오른쪽 어깨에 혈전이 생겨 시즌을 일찍 접어야 했다.

 

농구공을 내려놓은 사이 웸반야마는 몸과 함께 마음을 단련할 곳을 찾았다. ESPN에 따르면 에이전트 부나 은디아예가 중국과 인도, 일본의 무술 고수와 수련법을 두루 살핀 끝에 고른 곳이 소림사였다. 

 

소림사의 하루는 새벽 4시 30분에 시작됐다. 승려들과 함께 채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쉬는 시간엔 어린 승려들에게 농구 기본기를 가르쳐 주고, 대신 무술 동작을 하나씩 배웠다.

 

오후엔 무술 수련이 이어졌다. 가슴팍에 ‘少林寺(소림사)’ 세 글자가 박힌 검은 반팔 티셔츠를 입은 웸반야마는 체력 코치와 나란히 서서 소림 무술의 기본 권법인 ‘소림 13권’을 몸에 익혔다. 몸의 중심을 잡고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동작이다.

 

웸반야마가 승려들과 함께 명상하고 있다. 웸반야마 SNS 캡처

 

가장 힘들어한 건 명상이었다. 저녁마다 승려 100여 명이 말 한마디 없이 가부좌를 트는 시간이었다. 수련을 이끈 옌안 스님의 회고에 따르면 첫 명상을 마친 웸반야마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왜 그냥 여기 앉아 있는 거죠?”

 

엿새째 되던 날, 질문이 달라졌다.

 

“내 감각을 훈련할 방법이 있을까요?”

 

옌안 스님은 불빛 하나 없는 밤, 웸반야마를 데리고 소림사 뒷산 달마동굴까지 올랐다. 낮엔 몸을, 밤엔 마음을 단련하라는 뜻이었다.

 

2026~2027시즌 NBA 개막전에 나선 빅터 웸반야마(가운데). 연합뉴스

 

파이널까지 오른 ‘외계인’

 

산에서 내려온 외계인은 더 단단해져 있었다. 이어진 2025~2026시즌엔 팀을 이끌고 생애 처음 NBA 파이널 무대를 밟았다. 웸반야마가 코트를 휘저을 때마다 중국 팬들 사이에선 “소림사에서 진짜 뭔가 배워 왔네”라는 농담이 돌았다.

 

실제로 옌안 스님은 소림 무술의 힘 쓰는 법을 응용해 두세 명씩 달라붙는 수비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훈련을 시켰다. 웸반야마도 “내 몸이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겪게 하고 싶었다”며 “움직임의 범위를 넓히고 힘을 키우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올여름엔 소속팀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5년 2억5200만달러(약 3400억원)에 연장 계약을 맺었다. 수천억원짜리 계약서에 사인하고도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비시즌엔 농구공 대신 럭비공을 들고 프랑스 럭비팀과 몸을 부딪혔다.

 

지난달 막을 올린 2026~2027시즌은 스물두 살 웸반야마의 네 번째 시즌이다. 출발은 삐걱댔다. 개막전에서 슛 13개 가운데 1개만 넣는 데 그쳤지만 경기 뒤 꺼낸 말은 소림사의 명상실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즐길 때 잘한다. 생각을 덜 해야 한다.”

 

명상실에서 ‘왜 그냥 앉아 있느냐’고 묻던 외계인이 찾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