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김민재 칩 바이어 인터뷰
MZ 열광하던 소비뇽블랑 올해 주춤
“산도·아로마 뛰어난 알바리뇨 뜰것”
금양과 토레스 알바리뇨 등 선보여
음식과 와인 페어링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죠. 짝만 잘 찾으면 음식의 부족한 부문을 메꿔 입맛을 북돋워 줍니다. 반대로 음식이 와인의 숨은 풍미를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롯데백화점 김민재 칩 바이어는 이런 음식과 와인 페어링에 특별난 재주가 있는 소믈리에입니다. 대학에서 조리를 전공하고 셰프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MZ 세대가 열광하는 소비뇽 블랑의 바통을 이어받을 다음 주자로 스페인 알바리뇨 품종을 꼽았습니다. 김민재 칩 바이어는 수입사 금양인터내셔날과 손잡고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 3종 세트를 롯데백화점 단독 기획으로 선보이는데, 삼총사의 대표 주자가 스페인 와인 명가 토레스의 알바리뇨 와인입니다.
◆요리사, 소믈리에 그리고 백화점 바이어
김민재 칩 바이어의 원래 꿈은 셰프였습니다. 대학에서 조리를 전공하던 2007년, 1학년 때 파스타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홀에서 남은 와인을 주방에서 맛보다 인생 와인을 만났습니다. 당시 국내 1등 와인으로 통하던 마주앙이었습니다. “이런 게 와인이구나” 싶었던 그날부터 와인을 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와인을 공부하러 호주로 훌쩍 떠났지만 처음부터 와인 일을 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애들레이드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1년을 꽉 채워 일했습니다. 바로 위층에 와인 셀러가 있어 틈만 나면 올라가 와인 맛보고, 레스토랑에 들어오는 와인들을 직접 다루며 공부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존경하던 국내 1호 여성 소믈리에 염경자 소믈리에가 있던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 2014년 들어갔습니다. 34층 프렌치 레스토랑 ‘테이블 34’에서 2019년까지 소믈리에로 현장을 익혔고, 이후 같은 층 중식당 ‘웨이루’를 거쳐 갑니다. 서울 파르나스에 몸담고 있던 2019년 4월 남프랑스 와인 산지 루시용(Roussillon)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와인 전문가 19명에게 수여된 루시용 기사 작위를 받아 루시용 와인 앰배서더로도 활약합니다.
롯데백화점과의 인연은 헤드헌팅으로 이어졌습니다. 호텔 생활에 만족해 이직은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고 대학원과 일을 병행하며 고민이 깊던 때 제안이 왔습니다. 그렇게 2022년 2월 롯데백화점에 합류했습니다. 첫 근무지는 롯데마트 ‘보틀벙커’가 있는 잠실점입니다.
요리를 했던 경험은 지금도 그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와인만 놓고 보면 50점짜리라고 생각해요. 음식과 곁들여야 와인이 가진 속성을 가장 잘 끌어낼 수 있죠. 셰프로 일하며 식재료를 많이 고민했기 때문에 고객에게 훨씬 디테일하게 제안할 수 있습니다.”
백화점에서 그는 상품 개발을 주도합니다. 대표 작업이 아트 콜라보입니다. 이강소 작가와 샴페인 마이(Mailly)의 최상위 퀴베 렝탕포렐(L’Intemporelle), 심문섭 작가와 나파 밸리의 프리마크 아비(Freemark Abbey)를 엮어 한정판 라벨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을 입은 와인은 올 추석 물량의 약 90%가 팔려나갔습니다.
롯데백화점의 블라인드 와인 경연 ‘더 블라인드’도 그의 주요 무대입니다. 1976년 프랑스 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을 블라인드로 겨룬 ‘파리의 심판’에 대한 오마주로, 화이트는 5만원 미만, 레드는 10만원 미만이라는 가격 상한을 뒀습니다. 고가 프리미엄 와인이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맛있게 마실 와인을 백화점에서 내놓자는 취지입니다.이번 단독 와인 기획도 이 블라인드 무대에서 싹텄습니다.
그가 이번에 수입사 금양인터내셔날과 기획한 3종 세트는 토레스 로코스 델 비노 알바리뇨(Torres Locos del Vino Albariño), 카사 로호 레반 샤르도네(Casa Rojo Levan Chardonnay), 뛰느방 도멘 데 사빈 라랑드 드 뽀므롤(Thunevin Domaine des Sabines Lalande de Pomerol)입니다. 카사 로호 레반 샤르도네는 현재 수입중이며, 뛰느방 도멘 데 사빈 라랑드 드 뽀므롤은 12월, 토레스 로코스 델 비노 알바리뇨는 내년 1월 수입돼 롯데백화점을 통해서만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중 카사 로호 레반 샤르도네는 지난 대회 화이트 부문에서 탈락한 와인 가운데 가장 아쉬웠던 와인이었습니다. “여러 샤르도네 사이에서 처음엔 샤블리 같다 싶었는데 바디감이 받쳐주고 피니시가 굉장히 길게 넘어갔어요. 이 가격대에 들어올 수 있나 싶을 만큼 품질이 좋았습니다.” 당시에는 가격이 맞지 않아 본선에 오르지 못했지만, 금양인터내셔날과 가격을 다시 조율하면서 단독 상품으로 부활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몰랐던, 한국에 유통되지 않은 가치 있는 와인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다”며 “우리가 너무 좁은 와인 시장을 보고 있었구나 싶었다”고 말합니다.
나머지 두 와인은 블라인드 대회 출품작이 아닙니다. 소믈리에 출신 바이어 3명이 앞으로 성장할 품종을 먼저 정하고, 금양인터내셔날에서 미수입 샘플을 받아 시음과 토론을 거듭해 골랐습니다. 알바리뇨를 고른 이유는 소비뇽 블랑 다음으로 뜰 품종이라 예견됐기 때문입니다.
“지난해까지 제일 좋아하는 와인이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이라는 분이 많았는데, 요즘은 ‘아직도 그거 좋아해?’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예요.” 실제로 소비뇽 블랑은 여전히 화이트 와인 매출 1위지만, 지난해까지 오르던 성장세가 올해 멈췄습니다. 그는 “알바리뇨는 소비뇽 블랑과 겹치는 산도의 매력이 있으면서도 뒤에 오는 미네랄이 확실히 다르다”며 “가격까지 합리적이라 한번 마셔보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자신합니다. 스페인 와인을 고른 이유도 분명합니다. “전문가들은 예전부터 알았지만, 이제는 일반 소비자들도 스페인 와인의 가성비를 알아보는 때라 소개하기 딱 좋은 시기랍니다.”
뛰느방은 비슷한 금액으로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을 찾다 만났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우안의 라랑드 드 뽀므롤은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현지에서는 가성비 좋은 메를로 산지로 이름난 곳입니다. 뽀므롤과 비슷한 토양을 공유하면서도 가격 부담은 훨씬 적습니다. 그는 “와인을 잘 모르면 알바리뇨에서 시작해 샤르도네, 라랑드 드 뽀므롤 순서로 드셔보시라”며 “그러면 실패하지 않는다”고 자신합니다.
백화점 와인은 비싸다는 선입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대학원에서 구매처별 소비자 인식을 주제로 논문을 썼던 그는 “백화점 고객은 매장 환경과 매니저의 전문성, 서비스 신뢰도를 중요하게 보고, 마트 고객은 가격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며 “채널마다 강점이 다를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잠실에 보틀벙커가 문을 열었을 때 롯데백화점 잠실점 와인 매출이 크게 빠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영향은 10% 미만에 그쳤습니다. 고객층이 그만큼 다르다는 뜻입니다. 가격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백화점이 더 싼 경우도 많습니다. 좋은 와인을 합리적으로 사려면 1년에 4번 열리는 ‘롯데백화점 와인위크’를 노리면 됩니다. 이 기간에는 마트와 견줘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가격이 많습니다. 우수 고객 프로그램 ‘에비뉴엘’ 회원이 되면 전용 와인 행사와 와인 클래스도 누릴 수 있습니다. 칩 바이어와 바이어들이 전 점포의 품질을 직접 관리해 와인 상태도 자신 있게 보증합니다.
매장에서 와인을 고를 때 팁도 간단합니다. 원하는 것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말하면 됩니다. “와인을 이제 막 시작했고, 예산은 3만원 미만이면 좋겠고, 달콤한 스파클링이 마시고 싶다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음식과 마실지까지 알려주시면 더 좋습니다. 그걸 진상이라고 오해하는 분이 많은데 전혀 아닙니다.”
와인 입문자, 이른바 ‘와린이’에게 전하는 그의 조언은 따뜻합니다. “와인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건 평론가의 점수나 브랜드가 아니라 결국 나의 입맛입니다. 너무 욕심내서 그랑 크뤼부터 찾지 마시고, 와린이 시절을 충분히 즐기세요.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기준이 생겨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칩 바이어가 고른 와인 3종 세트
이번 기획은 “와인을 즐기는 소비자가 실제로 궁금해하고 시도해 보고 싶은 와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익숙한 구대륙·신대륙 구도를 넘어 각 산지에서 가장 매력적인 품종과 스타일을 합리적인 가격에 경험하게 하자는 것이 목표입니다. 산뜻한 알바리뇨에서 볼륨감 있는 샤르도네, 부드러운 메를로로 이어지는 단독 3종은 와인 입문자가 한 단계씩 올라가는 ‘계단’처럼 구성했습니다.
▶토레스 로코스 델 비노 알바리뇨 2024(Torres Locos del Vino Albariño 2024)
싱그러운 레몬과 자몽 같은 시트러스 향이 먼저 반기고 흰 꽃향이 뒤따릅니다. 입에 머금으면 톡 쏘는 산도와 함께 바닷바람을 머금은 듯한 짭조름한 미네랄이 퍼집니다. 김민재 칩 바이어는 “고객들은 ‘미네랄이 뭐냐’고 묻을 때 입에 닿는 염분감, 짠맛이라고 하면 바로 알아챈다”며 “그 맛에 한번 빠지면 미네랄이 부족한 화이트 와인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낀다”고 말합니다. 질감은 부드럽고 생기 있으며 여운이 깁니다.
제철 굴과 광어회, 해산물 파스타는 클래식한 짝입니다. 배달 음식이라면 초밥이나 날치알 샐러드도 좋습니다. 김민재 칩 바이어가 강력 추천하는 조합은 프라이드 치킨입니다. “요즘 치킨집 중에는 염지가 덜 된 곳이 많아 먹다 보면 퍽퍽하고 맛이 부족한데, 알바리뇨와 함께 먹으면 부족한 맛은 채워주고 느끼함은 덜어줍니다.”
레이블 속 주인공은 토레스가 갈리시아의 바다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시킨 ‘조수의 파수꾼’ 센티넬라 데 라스 마레아스(Centinela de las Mareas)입니다. 포도송이와 가리비로 머리를 장식한 여인이 대서양 파도와 한몸이 돼 포도를 건네는 모습으로, 파도를 지켜보며 바다와 함께 살아온 갈리시아 사람들의 인내를 담았습니다.
토레스는 1870년 스페인 페네데스(Penedès)에서 문을 연 가족 와이너리로 스페인 와인을 상징합니다. 로코스 델 비노는 토레스가 2026년 여름 스페인에서 새로 내놓은 브랜드로, ‘와인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이름처럼 각 산지의 개성을 자유롭고 유쾌하게 풀어냅니다. 알바리뇨는 비가 많고 대서양의 영향을 짙게 받는 리아스 바이샤스(Rías Baixas)에서 자라며, 레이블에는 ‘조수의 파수꾼(Centinela de las Mareas)’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알바리뇨 100%이고 알코올 도수는 12.5%입니다.
▶카사 로호 레반 샤르도네 2025(Casa Rojo Levan Chardonnay 2025)
처음에는 샤블리처럼 날렵하게 시작했다가, 이내 잘 익은 노란 복숭아와 파인애플, 은은한 바닐라 향이 겹겹이 쌓입니다. 샤르도네 특유의 볼륨감과 기분 좋은 과실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받쳐주는 바디감에 피니시도 길게 이어집니다. 석회질 토양에서 오는 미네랄이 전체를 산뜻하게 다잡습니다.
버터에 구운 전복이나 전복 버터밥, 크림소스 뇨키처럼 고소한 요리와 찰떡입니다. 김민재 칩 바이어는 페어링 메뉴로 코스트코 로티세리 치킨을 꼽습니다. “간이 꽤 센 닭인데 샤르도네의 풍미가 짠맛을 잘라주고, 오븐에서 구운 로스팅 풍미와도 잘 어울립니다. 문어숙회, 문어 오븐구이와도 궁합이 좋습니다.”
카사 로호는 호세 루이스 고메스(José Luis Gómez)와 라우라 무뇨스(Laura Muñoz) 부부가 2010년 세운 스페인 부티크 와이너리입니다. 두 사람은 각자 출장 중이던 일본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프랑스의 네고시앙처럼 스페인 곳곳의 산지에서 토착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고, 랍스터, 오페라 가수처럼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일러스트 레이블로 유명합니다. 고메스는 “와인은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레반은 1990년대 고메스를 와인의 세계로 이끈 원조 프로젝트입니다. 해발 약 800m의 석회질 양토에서 유기농으로 기른 샤르도네의 프리런 주스만 써서 만듭니다. 14~16도에서 27일 동안 천천히 발효하고, 효모 앙금과 3개월 숙성합니다. 알코올 도수는 13%입니다.
▶뛰느방 도멘 데 사빈 라랑드 드 뽀므롤 2019(Thunevin Domaine des Sabines Lalande-de-Pomerol 2019)
자두와 블랙베리의 풍부한 과실미에 은은한 흙내음, 스모키한 에스프레소 향이 어우러집니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타닌이 입안을 감싸고 피니시는 신선하게 마무리됩니다. 빈티지로부터 6년 넘게 숙성을 거쳐 지금 바로 마시기 좋은 시음 적기에 들어섰습니다.
잘 구운 스테이크나 메인 고기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김민재 칩 바이어는 양갈비를 추천합니다. “라랑드 드 뽀므롤에는 허브 뉘앙스가 있어서 양고기 립과 함께하면 정말 맛있습니다.”
뛰느방은 보르도 ‘가라지 와인’의 거장 장 뤽 뛰느방(Jean-Luc Thunevin)이 이끄는 와이너리입니다. 그는 1991년 생테밀리옹의 작은 차고에서 샤토 발랑드로(Château Valandraud)를 빚어 보르도를 뒤흔들었는데 발랑드로는 2012년 생테밀리옹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에 올랐습니다. 2006년 아내 뮈리엘 앙드로(Murielle Andraud)와 함께 사들인 도멘 데 사빈은 이전 소유주가 딸 사빈의 이름을 붙인 곳입니다. 라랑드 드 뽀므롤의 가벼운 자갈 토양과 네악(Néac)의 점토 토양 약 4.3ha에서 평균 수령 35년 안팎의 포도를 기르며, 1ha당 9000그루를 촘촘히 심어 품질을 끌어올립니다. 보통 메를로 80%, 카베르네 프랑 15%, 카베르네 소비뇽 5%를 섞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콘크리트 탱크에서 발효하고 프렌치 오크 배럴(새 오크 평균 30%)에서 약 12개월 숙성합니다. 연간 생산량은 약 2만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