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사후 반세기 만에 고국 땅 묻힌다

과테말라 대문호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고국 쿠데타 이후 20년간 해외 망명 생활
소설 ‘대통령 각하’로 1967년 노벨문학상
1974년 별세 뒤 프랑스 파리 묘지에 묻혀
유해 본국으로 운구된 후 ‘국장’ 엄수 예정

과테말라 국적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사후 52년 만에 고국 땅에 묻히게 됐다. 스페인어권의 대문호로 꼽히는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1899∼1974)가 주인공이다.

 

3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이날 아스투리아스의 아들(85)에게 고인의 유해를 양도했다. 파리 페르라셰즈 공동묘지에 묻힌 고인의 시신은 최근 발굴돼 화장 절차를 거쳤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큰 묘지인 페르라셰즈에는 고인 외에도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와 미국 가수 짐 모리슨(1943∼1971) 등 유명인들의 무덤이 있다.

 

1967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과테말라 작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1899∼1974)의 생전 모습. 1954년 과테말라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뒤 20년간 국외에서 망명 생활을 한 그는 별세 후 프랑스 파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AFP연합뉴스 

이날 유해 인수식에 참석한 아들은 고인의 유골함을 건네받은 뒤 “아버지가 너무나 사랑하셨던 이 나라(프랑스)를 떠나시게 되어 안타깝다”는 소감을 밝혔다. 1954년 과테말라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뒤 아스투리아스는 아르헨티나, 칠레, 프랑스 등 타국을 떠돌며 망명 생활을 했다. 특히 프랑스에는 10년간 체류하며 스페인어권 국가들 언론사의 파리 특파원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다. 아스투리아스가 1974년 스페인에서 74세를 일기로 별세한 뒤 프랑스로 운구돼 페르라셰즈 묘지에 안장된 것도 그 때문이다.

 

고인의 50주기이던 2024년 아들 등 유족은 아스투리아스가 생전에 지지했던 사회민주당이 대선 승리로 집권당이 된 점을 들어 “이젠 아버지가 과테말라로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는 결정을 내린 뒤 프랑스 정부와 협상을 개시했다. 아스투리아스의 유골은 오는 12일 과테말라에 도착할 예정이며, 그 이후 정부 주도로 국장(國葬)이 엄수된다.

 

아스투리아스는 판사인 부친과 교사인 모친 사이에 태어났다. 군사 정권에 비판적인 부친은 반정부 투쟁에 가담한 대학생들을 석방하는 등 소신있는 판결로 법원 지휘부의 미움을 사 해임됐다. 그 때문에 아스투리아스도 일찌감치 사회 현실에 눈을 뜨고 학생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1967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과테말라 작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1974년 별세)의 아들(가운데)이 파리 시내 공동묘지에 묻혔던 부친의 유골함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과테말라 정부는 아스투리아스의 유해가 본국으로 운구된 뒤 국장으로 고인을 예우할 방침이다. AFP연합뉴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아스투리아스는 1930년대부터 변호사, 외교관, 언론인 등으로 일하며 틈틈이 소설과 시도 썼다. 그의 작품은 정권의 부정부패 등을 날카롭게 꼬집는 내용이 많아 당국의 감시 대상에 올랐다. 1954년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 대령이 이끄는 반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을 때 아스투리아스가 시민권을 박탈당한 이유였다.

 

과테말라를 떠나 중남미와 유럽을 전전하며 아스투리아스의 문학적 명성은 높아졌다. 그가 1946년 펴낸 장편소설 ‘대통령 각하’가 스페인어권을 넘어 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은 1898∼1920년 과테말라를 통치한 마누엘 에스트라다 카브레라 독재 정권을 모델로 삼았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와 그의 비위를 맞추며 부와 권력을 누리는 탐관오리들, 그리고 그 밑에서 신음하다 죽어가는 국민의 처참한 실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극찬을 받았다.

 

1960년대 들어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된 아스투리아스는 결국 1967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과테말라 역사상 노벨상 수상자는 아스투리아스를 포함해 2명이다. 과테말라 원주민 인디오의 권익 옹호에 힘쓴 인권 운동가 리고베르타 멘추(67)는 199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