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실에 무단 침입해 여교사의 개인 물품에 체액을 투입한 10대 피의자에게 단순 재물손괴가 아닌 ‘성범죄’ 혐의가 추가 적용됐다.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없더라도 물건을 매개로 한 성적 오염 행위를 강제추행으로 판단한 최근 대법원 판례가 수사에 전격 반영되면서 피의자의 죄명이 대폭 무거워졌다.
4일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건조물 침입 및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했던 10대 A군에게 강제추행 미수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를 추가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 빈 교실 침입해 텀블러·의자 연쇄 오염…특정 교사 반복 표적
A군은 지난 4월 27일 오후 서귀포시 소재 한 초등학교 교실에 몰래 들어가 여교사 B씨의 텀블러에 체액을 넣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다.
A군의 범행은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6월 5일 오후 2시쯤에는 B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던 동일한 교실에 재차 침입해 교사용 의자에 소변을 보고 달아나는 등 같은 피해자를 겨냥한 범행을 이어갔다.
B교사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며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 초기 A군에게 건조물 침입과 재물손괴 혐의만을 적용해 입건하는 데 그쳤다. 당시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건에 체액을 투입한 행위를 강제추행죄의 성립 요건인 ‘유형력(물리력 행사)’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사법적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물건 체액 투입도 추행’…수사 흐름 바꾼 대법원 판례
교착 상태에 머물던 수사는 지난 7월 나온 대법원 판례를 기점으로 급반전을 맞았다.
대법원은 2024년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카페 여직원 음료 체액 투입 사건 상고심에서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확정했다. 피해자가 마시는 음료에 체액을 넣은 행위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적 유형력의 행사이자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체액이 피해자의 체내로 들어가 신체 접촉에 이를 개연성이 명백하다는 취지였다.
경찰은 해당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서귀포 사건에 즉각 적용했다. A군이 고의로 텀블러에 체액을 넣어 피해자가 이를 실제로 마실 수 있는 위험 상황을 조성한 만큼, 신체 접촉 이전 단계라도 강제추행죄의 유형력 행사가 성립한다고 결론지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제주 사건에서도 고의로 텀블러에 체액을 투입해 피해자가 마실 수도 있었으므로, 강제추행죄의 유형력 행사가 있었다고 보고 성범죄 혐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체액이 피해자의 신체에 직접 접촉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아 강제추행이 미수에 그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동일 피해자를 상대로 2개월 간격으로 교실에 침입해 개인 물품을 오염시킨 정황 역시 지속적·반복적 괴롭힘으로 인정되면서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도 함께 얹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