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9년 1월, 카이사르는 자신을 따르는 정예 제13군단과 함께 이탈리아 국경 루비콘강 앞에 섰다. 그의 군사적 영향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군대를 해산하고 복귀하라는 원로원과 정적 폼페이우스의 명령이 귀에 아른거렸다. 무장을 해제하지 않고 군대와 강을 건너는 건 로마에 대한 반역이었기에, 그는 잠시 고뇌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결국 강을 건넌 카이사르는 순식간에 이탈리아를 장악하고 폼페이우스까지 제압한 뒤 최고 권력자가 됐다. 복귀한 그가 펼친 정책은 피의 숙청이 아닌 ‘관용’이었다. 비록 브루투스 일파에 암살됐지만, 그는 로마제정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평가됐다.
군사반란으로 코가 잘린 채 크림반도에 유폐됐다가 탈출한 뒤 복위한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2세의 선택은 달랐다. 자신을 축출한 정적을 상대로 광기 어린 복수극을 벌이다 민심을 잃고 또 다른 군사반란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엘바섬에 유배됐다가 탈출해 다시 황제로 복귀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역시 무모한 전쟁을 선택했다가 워털루에서 참패한 뒤 세인트헬레나에 영구 유배됐다. 두 차례나 실각을 경험했던 덩샤오핑은 집권 이후 정치적 이념 논쟁을 뒤로하고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개혁·개방을 선도, 중국을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