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꿈꾸던 ‘인간’이 되었나요?

인공지능(AI)이 만든 노래가 사람을 울린다.

 

살아본 적 없는 목소리가 사는 일의 고단함을 노래한 곡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는 인간 대중의 선택을 받았다. 지난달 멜론 톱100 차트에서 2위까지 올랐다. 지금도 리센느, 아일릿, 에이티즈 등 쟁쟁한 K팝 인간 아이돌과 차트 상위권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다.

정세진 사회부 기자

뮤직비디오에는 AI로 제작한 고속도로 풍경만 반복된다. 그런데도 유튜브 조회수는 1631만회를 넘겼고, 인기 뮤직비디오 3위에 올랐다. 8000여개의 댓글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쌓였다. 제 얘기 같아 펑펑 울었다는 이도 있다. AI 노래라는 걸 알게 된 후 배신감을 느꼈다는 이도 있지만, 위로받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AI가 인간을 대신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놀라던 시기는 옛날 옛적이 됐다.

 

논리적인 답변도, 그럴듯한 그림과 음악도 익숙해졌다. 지금 눈여겨볼 변화는 따로 있다. 그 결과물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다. 사고와 판단의 영역에서는 이미 인간은 AI에 권위를 부여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SBS의 조사에서 국민 3명 중 1명은 자신의 판단보다 AI의 의견을 더 믿는다고 답했다. 그 셋 중 하나에 대통령이 끼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수사기관장의 국무회의 배석을 둘러싼 비판에 제미나이의 답변을 공개하며 반박했다. AI의 답변을 자신의 주장 근거로 내민 것이다.

 

“AI가 그러던데.”

 

이 한마디가 회사 부장부터 국가 수장까지의 뒷배가 된다. 인간은 그렇게 AI의 답변에 권위를 부여하고 선택했다. 그나마 예술은 인간의 자존심이 남은 영역이었다. 예술에서는 사람이 만든 것에 더 후한 점수를 줬다. AI가 만들었다는 사실은 작품의 값을 깎는 이유가 되곤 했다. 논리적인 답변을 AI가 내놨다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더라도, 노래를 듣다 AI라는 것을 알고 배신감을 느꼈다는 반응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받은 위로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계의 답변에 권위를 부여하듯, 이제는 기계의 노래에도 인간 삶의 의미를 포개고 있다.

 

기계에 이성과 감정을 모두 의탁하는 인간은, 미국 작가 필립 K 딕의 1968년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서도 등장한다.

 

등장인물은 감정을 느끼지 못해 여섯 시간의 우울감을 느끼기 위해 기계에 의탁한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우리도 이제 기계 AI를 찾는다.

 

사람들은 AI가 부르는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라는 물음에 이루지 못한 꿈을 떠올리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AI의 목소리에 위로받으며 어떤 어른이 됐는지 스스로 묻는다. 정작 우리가 꿈꾸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과 판단을 기계에 의탁하고, 창작과 위로마저 기계에 기대는 삶이었을까.

 

그 노래를 듣는 우리에게도 묻고 싶다. 우리는 꿈꾸던 인간이 되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