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대통령, 부실은행 비리 의혹 실각…남미 ‘블루타이드’ 약화

남미 우파 지도자 중 한 명인 산티아고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은행 비리 연루 의혹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임했다.

 

파라과이 중앙은행이 대형 디지털 은행인 ‘우에노 은행’에 대한 정리 절차를 단행한 지 사흘 만이며, 야권이 그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한 지 하루 만이다.

산티아고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 AP연합뉴스

보수 성향의 페냐 대통령이 사임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중남미를 강타한 ‘블루타이드’(우파 집권 물결)도 한층 약세를 보이고 있다.

 

페냐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영상을 통해 “우리나라의 안정, 사회적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 제도를 수호해야 할 필요성을 염두에 두고 이같이 결정했다”며 사임 사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만약 제가 어느 시점에 실수를 저질렀다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리고 싶다”고 말했으나, 파산한 우에노 은행과의 연루 의혹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페냐 대통령의 임기는 2023년 8월부터 2028년까지다. 페냐 대통령의 사임으로 이날 오후 페드로 아얀시아 부통령이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또한 조기 대선 보다는 당분간 권한대행 체제로 가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페냐 대통령의 사임 발표는 이날 하원 본회의에서 대통령 탄핵안 심의가 이뤄진 지 하루만에 나왔다. 전날 야권 하원의원 35명은 직무 비위 및 이해충돌 행위 등을 이유로 의회에 대통령 탄핵안을 제출했다.

 

80명의 하원 전체 의원 중 3분의 2가 넘는 최소 53명이 찬성해야 탄핵안이 가결되지만, 야권 의원의 수가 과반에 미치지는 못한 상황이었아.

 

그러나 5일 본회의에서 집권 여당인 공화국국민연합(ANR)이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전직 대통령이자 여당의 정신적 지주인 오라시오 카르테스 ANR 대표가 탄핵을 지지한다고 발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대통령의 사임 발표에도 의원들은 표결에 들어가 탄핵안을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전직 대통령에게 부여되는 면책특권을 박탈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파라과이에서는 전직 대통령에게 종신 상원의원직과 함께 형사소추를 피할 수 있는 면책특권이 부여된다. 그러나 탄핵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되면 면책특권을 잃게 된다.

 

페냐 대통령 퇴진의 뇌관이 된 우에노 은행은 애초 2021년 무명의 핀테크 업체로 출발했다. 우에노 은행은 이번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대형 디지털 은행으로 급성장했다.

 

페냐 대통령은 취임 직후 당시 우에노 은행장이었던 카를로스 카르발로를 중앙은행장으로 발탁했고, 이후 막대한 공공 자금을 쏟아부은 바 있다.

 

이번 파라과이 정권에서 8억∼8억5000만달러(약 1조700억원~1조1500억원) 규모의 나랏돈이 우에노 은행에 들어갓다. 우에노 은행으로 들어간 자금 중에는 파라과이 국가 연기금(IPS)이 투입한 3억8000만달러(약 5100억원)도 포함됐다.

 

그러나 지난 4일 파라과이 중앙은행이 우에노 은행에 대한 정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히고, 이에 따른 예금 대량 인출 사태(뱅크런)로 예금 출금마저 막혔다.

 

이처럼 정권의 비호 속에 키워온 부실 은행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서민들의 자산마저 묶이자 민심이 폭발했고, 수도 아순시온 등 전국 각지에서는 격렬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페냐 대통령의 실각으로 중남미 블루타이드 한층 약화될 전망이다. 페냐 대통령이 이끌던 파라과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해 발족한 다자 안보 협의체 ‘미주 방패’(Shield of the Americas)의 주요 회원국 중 하나다.

 

앞서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재선 등으로 우파 상승세가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남미 우파 진영에 또 하나의 악재가 터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