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 가도 즐길 문화 있어야”…대구에 힙합 축제 뿌리내린 여승현 공연기획자 [한국힙합 정정보도]

[한국힙합 정정보도⑧] 여승현 대구힙합페스티벌 기획자 인터뷰

2013년 작은 공연으로 출발…전국서 3만명 찾는 힙합 축제로 성장
“힙합은 다양성”…서울 가지 않아도 꿈꾸고 즐길 수 있는 지역 만들 것
세계일보는 한국힙합 30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한국힙합 정정보도>를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습니다. 다큐 제작을 위해 만난 1세대 래퍼와 청년 래퍼, 평론가, 리스너와의 대화는 42분에 다 담기지 않았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온라인 연재로 이어 갑니다.

 

대학생 시절 학생회 활동을 하며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것은 문화였다. 공연과 문화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공연을 보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했다. 대구의 한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여승현(40)이 직접 공연을 기획하기로 마음먹은 이유였다. 성공을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행사를 열 때마다 적자가 났고 빚을 떠안기도 했다. 번아웃으로 모든 일을 접은 시기도 있었다.

세계일보와 인터뷰 중인 여승현 현대사회 대표.

그렇게 버텨 탄생시킨 축제가 대한민국의 대표 힙합 축제로 꼽히는 ‘대구힙합페스티벌’이다. 2013년 시작한 작은 힙합 공연은 어느덧 지역을 넘어 전국을 대표하는 음악 축제가 됐다. 수도권에 집중된 공연 문화를 지역으로 가져오겠다는 여승현의 구상은 현실로 이어졌다. 전국 각지의 힙합 팬들은 매년 힙합으로 물든 대구를 찾는다. “타지에 나갔던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즐길 거리가 없으면 안 되지 않느냐”는 일념으로, 힙합을 넘어 지역의 다양한 콘텐츠로 축제를 만드는 일에 도전하고 있는 여승현 현대사회 대표를 지난 7월19일 대구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라질 뻔한 힙합 축제, 다시 무대 세운 13년의 뚝심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대구에서 2013년부터 힙합과 문화 콘텐츠 기획을 하고 있는 여승현이다.”

 

─법학을 전공했는데 공연 기획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뭔가

 

“대학 시절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 학생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로를 고민하면서 법학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문화를 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학교 축제 등을 기획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공연 기획을 직업으로 삼기로 했다.”  

─대구힙합페스티벌의 시작점이 궁금하다

 

“2013년에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지 고민하다 공연 기획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공연 문화를 대구로 가져오자는 취지였다. 처음에는 ‘독도수호힙합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열었다. 독도라는 역사적 주제를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힙합과 결합한 것이다. 관객들에게 공연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당시 외부 기관의 지원도 없었기에 빚도 많이 생겼다. 빚을 질 줄 알면서도 기부를 진행했다.”

 

─독도수호힙합페스티벌이 어떻게 대구힙합페스티벌로 이어졌나

 

“독도수호힙합페스티벌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했다. 그러면서 대구에서도 이런 행사를 원한다는 수요가 생겨났다. 대구힙합페스티벌은 2015년 별도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체 예산으로 진행했지만 2016년부터 대구시 지원을 받기도 했다. 2018년까지 행사를 이어갔지만 그때 번아웃이 와서 모든 일을 접었다. 이후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페스티벌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존폐가 위태로웠던 축제를 어떻게 다시 살렸나

 

“2022년쯤 공연 기획을 다시 해 보자고 스스로 마음을 먹었다. 코로나19도 끝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 맞는 사람을 찾아 나섰지만 함께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그동안 모아 둔 돈을 모두 털어 행사를 다시 준비했다. 공식 이름도 대구힙합페스티벌로 정했다. 이전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다 보니까 페스티벌 이름 앞에 ‘청춘’ 등의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많았다. 관객들이 우리 축제를 ‘대구힙합’, ‘대힙페’라고 불렀던 만큼, 페스티벌 이름도 간소화했다. 장소도 야외 공연장으로 옮겼고, 공연 일정도 이틀로 잡았다. 다시 시작한 행사는 예상보다 큰 호응을 얻었다.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원동력이 됐다.”

대구힙합페스티벌을 즐기는 관객들 모습. 여승현 대표 제공

─관객 규모는 얼마나 커졌나

 

“2015년까지는 영남대 노천강당 등에서 콘서트 형태로 공연했다. 2016년부터 넓은 야외 공간으로 나가면서 페스티벌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1만6800명, 2017년에는 두류야구장에서 진행해 2만1000명 이상이 몰렸다. 2018년에도 2만2000명 가까이 왔다. 2022년 다시 시작했을 때는 이틀 동안 약 3만2000명이 찾았다. 페스티벌 규모가 커지면서 전국 각지의 팬들이 관심을 가진 것이다. 최근에는 해외 관객도 많이 늘었다. 중국과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 관객이 많고 유럽에서도 팬들이 찾아온다. 대만 팬들은 페스티벌 전날 한국에 와서 공연을 본 뒤 다음 날 밤 비행기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관객과의 소통이다. 관객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보내오는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행사가 끝나면 메시지가 1만 개, 2만 개씩 쌓인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더라도 고객 응대는 끝까지 한다. 이런 모습에 감동한 관객들이 ‘누가 섭외되든 믿고 페스티벌에 가겠다’고 이야기한다. 관객들과 계속 소통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결국 페스티벌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다.”

 

─쇼미더머니 같은 미디어 프로그램의 인기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하지만 최근 한국 힙합의 인기는 예전만큼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시기를 지나 다시 변화를 겪는 것 같다. 어떻게 보나.

 

“당연하다. 미디어의 영향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일단 힙합이 해외에서 시작된 음악이었기에 우리나라에 자리잡기까지 과도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기가 2023~2024년이 아니었을까. 힙합이라는 장르가 쇼미더머니 등을 통해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얻었다가 이제는 코어층을 중심으로 힙합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쇼미더머니를 통해 유입된 이들도 있고, 애초 이 장르에 깊이 빠져드는 팬들도 있다. 힙합 유행에 힘입어 좋아하다가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은 코어층이 탄탄하게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전성기와 비교했을 때 페스티벌 관객층도 달라졌나

 

“10년 이상 시간이 흐르다 보니 관객들의 연령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관객 연령대가 굉장히 낮아졌다. 초등학생까지도 한국 힙합에 관심을 갖고 있다. 올드 팬들은 많이 떠났다. 인디 음악이나 다른 장르로 넘어간 경우도 있다. 물론 2013년부터 지난해인 2025년까지 매년 찾아온 분들도 있다. 하지만 관객층의 세대교체가 상당히 이뤄졌다고 보면 된다.”

 

─관객만큼 래퍼들도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요즘 청년 세대는 힙합을 통해 어떤 고민이나 욕망을 드러내나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힙합에서 가장 대표적인 메시지가 ‘돈 벌래’, ‘우리 돈 벌자’였다.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나는 눈치 보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내 할 말을 한다’는 분위기가 많아진 것 같다. 나만 알고 싶은 음악을 하는 래퍼나 아티스트들이 각광받는 분위기도 있다. 음악 자체만으로 분위기를 내는 그런 친구들이다. 2025년 페스티벌 때는 실험적으로 이러누 친구들을 많이 섭외하기도 했다. 과연 관객들에게 이런 음악이 통할까 고민도 됐지만 성공적이었다.”

 

◆ “서울 가지 않아도 즐길 문화 있어야”…대구에 남아 축제 만드는 이유

 

─서울로 향하는 청년들이 많은 상황에서 대구에 남아 문화기획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10년 넘게 이 일을 해오면서 사명감도 생겼다. 제 주변을 보면 타지에서 10년 정도 생활하다 다시 대구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지역에서의 삶이 팍팍하다 보니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들이 돌아왔을 때 대구에 즐길 거리가 없으면 안 되지 않나. 저는 그런 즐길 거리를 마련해 주고 싶다. 대구힙합페스티벌뿐 아니라 작은 콘서트와 파티, DJ 행사 등을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타지에 나갔던 친구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다시 대구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페스티벌 설문조사에서도 행사를 열어 주는 것만으로 고맙다고 관객들이 이야기를 많이 한다. 대구뿐 아니라 울산과 부산, 광주 등 다른 지역의 관객들도 대구힙합페스티벌을 자신들의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 기계에 대구힙합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래퍼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나

 

“당연하다. 지역 래퍼들을 위해 따로 힙합 경연대회도 열고 있다. 과거에는 대구 출신 참가자가 많았다. 지역 힙합 경연대회에서 수상한 친구 중에는 이후 방송에 출연하거나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에서 자기 색깔을 구축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대구 출신 참가자가 크게 줄었다. 예전에는 지원자 300명 중 대구 출신이 200명 정도였다면 지금은 10~20명 정도에 불과하다. 음악을 계속 발표하고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도전을 두려워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저희는 공간과 음향 시설을 제공하고 공연할 기회도 마련해 주려고 한다. 돈을 직접 지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인프라 측면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돕고 싶다. 다만 지금은 그런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들조차 많지 않아 아쉽다.”

 

─대구힙합페스티벌을 언제까지 이어가고 싶나.

 

“평생 하고 싶다. 첫 행사 때 관객이 60살이 되더라도 초청하겠다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물론 돈과 시간,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에 우선은 20주년까지라도 진행하는 게 목표다. 기억에 남는 관객의 이야기도 있다. 한 관객은 첫 힙합페스티벌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커서 함께 페스티벌에 오고 싶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대구힙합페스티벌이 하나의 역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희가 계속 이어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대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대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페스티벌을 더 만들고 싶다. 지금은 대구 수제버거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다. 1회 때 4000~5000명 정도가 왔고, 올해 5월 열린 2회 때는 이틀 동안 1만5000명 정도가 찾아왔다. 대구의 로컬 버거를 알리는 장이 됐다. 이 밖에 만두·찐빵 페스티벌도 준비하고 있다. 대구의 오래된 가게를 섭외해 소개하는 행사다. 서울에서는 연극이나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다. 그런 문화적 경험이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질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서울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방에서 다양한 축제와 공연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여 대표에게 힙합이란 무엇인가.

 

“다양성이다. 힙합 안에도 워낙 다양한 장르가 있고, 그 안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대구힙합페스티벌도 그런 다양성을 보여주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대구에 사는 청년들이 굳이 서울로 가지 않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를 즐기고, 또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올해 대구힙합페스티벌은 언제 열리나

 

“올해는 겨울에 열린다. 크리스마스인 오는 12월 25일과 26일 이틀간 대구 엑스코에서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