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총선 공약이었던 ‘식음료품 소비세 감경안’이 6일 중의원(하원)을 통과했습니다. 고물가에 시달리는 서민을 위해 2027년 4월부터 2년간 한시적으로 식음료품 소비세율을 현행 8%에서 1%로 인하한다는 내용이 뼈대를 이룹니다. ‘여소야대’인 참의원(상원)에서도 순조롭게 가결 처리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만,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 여행을 할 때 드는 밥값, 커피값도 덩달아 줄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식음료품 소비세가 7%포인트 인하되면 식당에서 사 먹는 라멘, 초밥 등 음식값도 저렴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최근의 엔저 현상에 소비세율 인하까지 더해지면 같은 경비로 보다 여유로운 일본 여행을 즐길 수 있겠죠.
과연 그럴까요.
매장 식사와 테이크아웃 소비세는 다르다
소비세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부과되는 간접세입니다. 한국의 부가가치세와 유사합니다.
일본은 1989년 처음으로 소비세(3%)를 도입했습니다.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비 증가와 안정적인 세수 확보 필요성이 명분이 됐죠. 이후 1997년 5%, 2014년 8%, 2019년 10%로 인상됐습니다. 2025회계연도 예산 기준 소비세수는 24조9000억엔(약 214조원)이었습니다. 일본 일반회계세수의 30%를 차지하는 중요 세원입니다. 이 가운데 지방 소비세분을 제외한 약 80%가 국세입니다. 국세 수입은 주로 연금, 의료, 노인 돌봄, 육아 지원금으로 쓰입니다.
현재 식음료품에는 8%의 세금이 붙습니다. 2019년 소비세율을 10%로 인상할 때 식음료품 등에는 예외를 뒀기 때문이죠. 일본 소비세는 표준세율 10%, 경감세율 8%의 이중 구조로 돼 있는 셈입니다.
가령 세전 가격 200엔짜리 과자는 16엔의 소비세가 붙어 218엔에 팔립니다. 일본 여행을 와서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과자, 음료 등을 구입할 때 매대에 적힌 가격보다 비싸다는 느낌으로 계산을 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매대에 세전 가격을 크게 표시해 놓고 소비세가 포함된 가격(税込)은 밑에 조그맣게 적어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식음료품에 경감세율이 적용되면서 편의점·카페·음식점의 매장 취식은 10%, 테이크아웃은 8%이라는 차이가 생겼습니다. 매장에서 섭취하는 음식과 주류에는 그대로 10% 소비세가 붙거든요.
세율 달라도 가격은 똑같은 카페·음식점 많아
예를 들어 500엔짜리 도시락을 구입해 매장에서 먹는다면 소비세 10%를 더해 550엔을 받고, 가지고 밖으로 나간다면 8%를 적용해 540엔을 받는 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일일이 ‘점내에서 드십니까, 포장입니까’라고 확인한 뒤 각기 다른 가격을 적용하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죠.
일본에는 매장 내 취식 공간이 없는 편의점이 많은 데에도 이런 영향이 있었습니다. 관리도 어려운데 소비세 구분까지 하자니 차라리 취식 공간을 없애고 잡화 판매 공간을 늘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죠.
카페나 음식점도 비슷합니다. 매장 내에서 취식하든 밖으로 가지고 나가든 가격은 동일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일본 커피전문점 도토루는 2022년 12월 일부 상품 가격을 인상하면서 가격을 통일했습니다. 온라인 비교 서비스 미쓰모아가 지난 8월 외식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테이크아웃 가격을 더 싸게 책정한다는 응답은 23%에 그쳤습니다. 계산 업무의 간소화, 고객과의 분쟁 방지, 포장 용기 비용 등을 고려해 이 같이 단일 가격제를 적용하는 것은 허용 범위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세후 550엔짜리 커피 음료의 경우 매장 내에서 먹을 땐 ‘세전 가격 500엔+소비세 50엔’, 가지고 나갈 땐 ‘세전 가격 약 510엔+소비세 약 40엔’으로 회계 처리가 달라집니다. 일본에서 소비세를 실제로 부담하는 것은 소비자이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각 점포 등 사업자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국세청은 외식업 사업자들에게 “판매 시점에 고객에게 매장 내에서 먹을지 가지고 나갈지 의사 확인을 한 뒤 구분 회계 및 신고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카이치 압박에도…음식값 인하는 미지수
감세가 시행되면 같은 커피를 매장에서 마실 때와 포장해 가져갈 때의 소비세율 차이가 2%포인트에서 9%포인트로 벌어집니다. 하지만 카페가 동일 판매가를 계속 적용한다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차이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니혼TV 인터뷰에서 식음료품 소비세율이 1%로 내려가더라도 가격을 내리지 않는다면 “가게 평판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식료품을 취급하는 업계를 향해 소비세 인하분 만큼 가격을 내리라는 압박성 박언으로 해석됐습니다. 현지 소셜미디어에서도 “가격 인하를 강요하는 것인가”라는 목소리가 확산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외식업계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한 외식 프랜차이즈 체인 운영자는 요미우리에 “식자재비는 물론 인건비, 임대료, 화재보험료까지 안 오른 게 없다. 가격을 내릴 여유가 없다”고 하소연했다고 합니다.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일본 라멘업계의 지난해 매출액은 8855억엔(추산)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지만, 이익은 전년 대비 거의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더욱이 식음료품 소비세 인하로 슈퍼마켓 등에서 구입하는 식자재값이 내린다면 소비자들이 외식을 기피하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외식업체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큽니다.
일본 외식업계가 가격을 내리는 결단을 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일본 여행 ‘편의점 털이’ 비용은 줄겠지만…
식음료품 소비세율 인하는 다카이치 총리가 고물가 대응책으로 내놓은 승부수입니다. 이날 중의원 표결 직전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 등 자민당 의원 4명이 본회의장에서 퇴장해 기권하는 등 여당 내에서도 반대파가 적지 않습니다. 대체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도 아직 뚜렷하게 나온 것이 없습니다. 2년 뒤에 다시 7%포인트를 올리는 것을 과연 일본 유권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소비세 감세 법안이 참의원까지 통과하면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 입장에서는 내년 봄부터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구입하는 식품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하지만 식당에서 먹는 라멘이나 초밥에는 여전히 10% 소비세가 붙습니다. 테이크아웃도 감세분이 판매가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업체 결정에 달렸습니다. 식음료품 소비세가 내려간다고 해서 일본 여행 때 드는 밥값이 일제히 저렴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