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 마도 앞바다에서 다섯번째 고선박이 발견됐다. 영암군(현재 전남 영암군)에서 출발해 개경으로 향하던 고려 배다. 출수된 유물은 54점. 닻돌과 밧줄, 볏섬, 청동 항아리 등인데 이 중 목간이 26점이다. 800여 년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 지난 4일 공개된 ‘마도5호선’의 모습이다.
마도 5호선은 한국 수중고고학의 가장 두드러진 패턴 두 가지를 보여준다. ‘마도’와 ‘목간’이다. 마도 앞바다를 포함한 태안 해역은 수중발굴의 성지다. 목간은 참으로 볼품없는 물건이지만 무엇도 보여주지 못한 역사의 디테일을 품고 있다.
◆찬란한 발굴이 된 바다의 비극
태안 해역은 ‘바다의 경주’로 불린다. 땅만 파면 문화재가 나오는 신라 1000년의 고도 경주처럼 바닷 속에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는 의미다.
고선박은 이런 압도적 위상의 상징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바다에서 발굴한 고선박은 총 16척. 마도 앞바다에서 5호선까지 나왔고, 6호선의 흔적까지 확인됐다. 마도에서 4㎞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온 태안선도 있다. 고선박의 3분의1 이상이 태안 해역에서 나온 것이다. 배에 실려 있던 고려청자 등 수많은 유물이 함께 나온 것은 물론이다. 태안선에서 2만 점이 넘는 고려청자가 나왔다.
태안 해역 수중발굴의 눈부신 성과는 이 곳에서 침몰한 배가 많았다는 의미다. 이 말은 또 태안 해역이 엄청나게 험한 바닷길이었다는 이야기다.
‘안흥량’(安興梁지금의 충남 태안 서쪽 끝인 신진도와 마도 주변 해역), 즉 태안 해역은 조선에서 가장 무서운 바다 중 하나였다. 해안선의 들고남이 심하다.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암초와 기복이 심한 해저의 지형 때문에 조류가 빠르다. 조수 간만의 큰 차이도 항해를 어렵게 한다. 그래서 거칠기로 유명한 4대 해역 중 하나로 꼽혔다. 심청이가 몸을 던져 거센 물결을 잠재웠다는 황해도 ‘인당수’, 해전에 익숙하지 않은 몽고군을 피해 고려 정부가 강화도로 천도할 때 길목이 되었던 강화도 ‘손돌목’, 거친 물살을 이용해 왜군 함대를 수장시킨 명량대첩의 바다 전남의 ‘울돌목’, 그리고 수많은 배들을 집어삼킨 충남의 안흥량이다.
피해가면 좋겠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남쪽에서 올라와 수도 개경이나 강화도로 갈 때 반드시 지나야 했다. 거친 바다는 배를 집어삼켰고, 피해는 전쟁 때를 방불케 했다. 기록에 따르면 태조 4년(1395)부터 세조 1년(1455)까지 60년간 200척의 경상도, 전라도 조운선이 침몰했다. 알려진 것만 1200명이 죽었다. 미곡 피해는 1만5800석에 달했다.
고민이 깊었던 조선 정부는 운하를 파려 했다. 안흥량을 피할 길을 육지에 뚫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실패했다. 인력, 재물만 낭비하고, 성과는 없었다.
◆나무에 새긴 800년 전 바닷길
목간은 화물운송장이다. 화물의 종류와 수량, 발송자와 수신자를 적었고, 날짜를 기록하기도 했다. 화물 기초 정보를 담기만 하면 됐으니 정성을 들일 것도 없었다. 대충 깍은 나무에 휘갈겨 적었다. 하지만 옛 바다길에 새겨진 역사를 꽤 구체적으로 전해 가치가 크다.
일단 각 선박의 항해 시기, 경로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마도 5호선에서 ‘정묘년’, ‘정묘 12월’이라 적힌 목간이 나왔다. 함께 나온 청자, 유기물 연대 측정결과 등을 감안하면 정묘년은 1207년이다. 발송지는 영암군, 안로현. 지금의 전남 영암 일대다. 고려의 수도 개경을 뜻하는 ‘경(京)’이 적힌 목간은 목적지를 알려 준다. 종합해 추정하면 5호선은 1207년 겨울 화물을 모아 이듬해 봄 개경으로 향하다 침몰한 배다.
마도1호선과의 관련성도 목간으로 확인됐다. 2009년 발견된 1호선은 1208년 전남에서 출발해 개경으로 향하던 배다. 1호선과 5호선의 발견 지점은 약 250m 떨어져 있다. 두 배에는 개경의 ‘송득덕’이란 사람에게 보내는 화물이 실려 있었다. 이런 내력을 전한 목간의 필적은 거의 동일했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두 배가 같은 선단에 속해 항해하다 침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17년의 시간차를 두고 발굴된 고선박 두 척이 목간으로 800여년 전 하나의 항해로 연결된 것이다.
목간은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전하기도 한다. 마도 2호선에서는 목간을 단 청자매병 2개가 나왔다. 이 목간에는 매병을 고려 당대에는 ‘樽’(준)이라고 불렀고 꿀, 참기름을 담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매병은 고려청자하면 떠올리게 되는 기형이지만 당대의 명칭, 기능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별로 없었던 터라 발견 당시 매우 주목을 받았다.
마도3호선 목간에서는 당대 최고 권력자의 입맛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1265년 항해에 나선 3호선에는 ‘현례’라는 사람이 강화도 고려 조정의 ‘김영공(金令公)’에게 보내는 홍합젓을 싣고 있었다. 수신자인 김영공은 김준이다. 노비 출신으로 출세를 거듭하다 최의를 죽이고 최충헌부터 60년 넘게 이어진 고려의 최씨 무신정권을 끝장낸 당사자다.
◆뻘이 지켜낸 800년의 시간
목간은 수중고고학의 또 다른 흥미로운 포인트과 연결된다. 어떻게 썩지 않고 수 백년의 시간을 견딘 것일까, 라는 의문이다. 나무로 만든 고선박에도 해당하는 질문이다. 심지어 마도 3호선은 운항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답은 뻘에 있다.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배 위로 고운 입자의 뻘이 천천히 내려 앉았다. 긴 시간에 걸쳐 차곡차곡 쌓인 뻘은 결국 돌처럼 단단해 졌다. 이것은 나무와 같은 유기물을 분해하는 미생물로부터 목간, 고선박을 보호하는 방어막이 됐다. 물론 뻘이 충분히 쌓이기 전 상당량이 썩어 없어졌겠으나 흔적을 남길 수는 있었고, 그것이 지금 발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선박 전부가 서해에서 발견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해 항로로 오고 간 수많은 배들의 이야기를 품은 타임캡슐이 이렇게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