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당이 된 뒤 인공지능(AI) 관련주 매도세가 세계 증시로 번졌다. 코스피는 5~6일 이틀간 10.98% 하락했다. 시장은 AI 데이터센터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에 반응했다.
미국 증시는 선거 직후인 4일(현지시간) 지수가 올랐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500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해도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해 급격한 정책 변화는 어렵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날에도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운영 업체 주가는 내렸다.
5일에는 매도세가 지수 전반으로 번졌다. 나스닥종합지수는 5.52% 내린 2만4315.00에 마감했다. 2025년 4월 이후 가장 큰 하락률이다.
S&P500지수는 4.36%, 다우지수는 3.44% 떨어졌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12.25% 급락했고 엔비디아와 마이크론도 큰 폭으로 내렸다. 나스닥은 10월 6일 기록한 최고치보다 10% 넘게 낮아져 조정 구간에 들어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다우존스 마켓데이터를 인용해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이날 나스닥 구성 종목의 시가총액은 약 2조5000억달러(약 3400조원) 줄었다. 하루 감소액으로는 집계상 역대 최대다.
S&P500 구성 종목의 시가총액도 약 2조9000억달러 감소했다. 두 지수에는 중복 편입된 기업이 있어 감소액을 합산할 수 없다. 일본 닛케이는 QUICK와 팩트셋 자료를 분석해, 5일 세계 증시 시가총액이 약 154조달러로 전날보다 3조5000억달러(약 4770조원) 줄었다고 전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데이터센터 건설의 전국적 유예를 촉구하는 등 규제 강화 목소리가 커지면서 AI 인프라 투자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UBS는 데이터센터 건설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면 2028년 미국 데이터센터 증설 예정 용량의 약 30%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가 하락을 선거 결과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의문은 선거 전부터 커지고 있었다. 10월 30일에는 인텔이 4분기 실적 전망을 부진하게 제시하며 28.58% 폭락했다. 대규모 AI 설비투자에 비해 수익이 늦게 나온다는 우려도 시장에 부담이었다.
6일 미국 증시는 일부 반등했다. 나스닥은 1.09%, S&P500은 약 0.31%,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4% 넘게 올랐다. 그래도 나스닥은 주간 기준 3.4% 하락해 4주 연속 내렸고, S&P500의 주간 하락률은 2.7%였다.
코스피는 4일 0.62% 올랐지만 5일 5.28% 내린 5383.80에 마감했다. 증권가는 4일 미국 증시에서 반도체주가 약세를 보인 영향으로 외국인이 반도체 대형주를 집중 매도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은 5일 3조3928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6일에는 낙폭이 더 커졌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24.11포인트(6.02%) 내린 5059.69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3월 31일(5052.46) 이후 약 7개월 만에 가장 낮다. 6월 22일 기록한 역대 최고 종가 9114.55와 비교하면 44.5% 낮은 수준이다.
장 초반 매도 물량이 한꺼번에 나오면서 오전 9시 3분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유가증권시장 매매가 20분간 중단됐다.
거래 재개 후에도 하락세가 이어져 9시 34분에는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피는 장중 8% 넘게 떨어져 4911.28까지 내려갔다가 낙폭을 줄였다. 코스닥은 5.03% 내린 644.27에 마감했다.
6일에도 외국인이 2조7692억원을 순매도했다. 이틀간 순매도액은 6조1620억원이다. 기관과 개인은 순매수했지만 지수 하락을 막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6.35% 내린 18만8700원에 마감해 20만원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는 10.44% 하락한 113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AI 반도체 투자 전망에 대한 불안이 국내 시장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6일 대만 자취안지수는 4.51% 내린 3만9701.64에 마감했다. 장 초반에는 3737.67포인트(8.99%) 떨어져 장중 포인트 기준 역대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는 장중 약 9.82%까지 내렸다가 낙폭을 줄여 4.69% 하락으로 마감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5.96% 내린 5만7434.77에 마감했다. 하락폭은 3643.13포인트로, 포인트 기준 역대 세 번째로 크다.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약 77조엔 줄었다.
미국의 AI 규제 강화가 얼마나 빠르게 현실화할지는 불확실하다.
민주당은 3일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다수당이 됐고, 데이터센터 개발이 활발한 텍사스와 조지아의 주지사 선거에서도 이겼다. 텍사스 주지사 당선인 지나 히노호사는 주 의회가 주민 보호 법안을 통과시킬 때까지 모든 데이터센터 승인을 금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조지아 주지사 당선인 키샤 랜스 보텀스도 신규 데이터센터에 대한 유예를 지지해 왔다. 연방 의회와 별도로 주정부 차원의 건설 제한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시장이 주목하는 이유다.
로이터통신이 6일 보도한 민주당의 입법 계획은 세 가지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고, 첨단 AI 시스템에 독립적인 안전성 검사를 도입하며, AI 제품이 피해를 일으켰을 때 기업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내용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내년 1월 새 의회가 출범하면 관련 법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척 슈머 의원은 전기요금 부담 문제를 내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로리 트라한 하원의원은 주요 AI 모델의 독립적 안전성 평가와 기업 책임에 관한 법안을 추진한다.
데이터센터 규제 논의가 새로 나온 것은 아니다. 미국 하원은 지난 9월 대형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확충 비용을 부담하도록 주정부 규제당국의 검토를 요구하는 법안을 찬성 417표, 반대 3표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9월 30일 상원 절차 표결을 넘지 못했다. 민주당은 규정이 의무가 아니어서 소비자 보호 효과가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차원의 강제적인 AI 규제에 반대해 왔다. 백악관은 3월 발표한 입법 방향에서 전기요금 급등 방지를 원칙의 하나로 제시했다.
규제 대상과 방식에 따라 대통령의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의회는 상·하원 각각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이를 뒤집어야 한다.
시장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 규제와 AI 수요 감소를 구분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규 시설 건설이 늦어져도 AI 서비스 수요가 곧바로 줄어든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급락은 규제가 기업 실적에 반영되기 전에 불확실성이 먼저 주가에 반영된 결과다. 앞으로의 흐름은 민주당 법안의 구체적 내용, 주정부 인허가 정책, AI 기업의 투자와 실적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