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77) 이스라엘 총리가 2022년 재집권 후 약 4년 만에 권좌에서 내려올 처지에 놓였다. 최근 의회(크네세트) 총선거에서 그가 이끄는 리쿠드(Likud)당이 과반 의석 획득에 실패한 것은 물론 연립정부 구성 가능성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네타냐후는 40대 후반의 젊은 나이이던 1996년 처음 총리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총 3차례에 걸쳐 19년 넘게 집권해왔다.
7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이츠하크 헤르초그(66) 이스라엘 대통령은 이날 차기 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의 우선권을 야당인 야사르(Yashar)당 가디 아이젠코트(66) 대표에게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아이젠코트를 차기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셈이다. 이에 따라 아이젠코트는 총 120석인 크네세트에서 과반 의석(61석 이상)의 동의를 얻는 연립내각 조각(組閣) 작업에 착수할 있게 되었다.
이번 총선에서 네타냐후의 리쿠드당 및 그 지지 세력이 53석, 아이젠코트의 야샤르당과 그 지지 세력은 48석, 그리고 아랍계 정당들이 나머지 19석을 각각 얻었다. 헤르초그 대통령은 선거 후 당선인들과 면담을 가졌는데, 새 총리 후보자로 67명이 아이젠코트를 추천한 반면 네타냐후는 46명에 그쳤다고 한다. 이는 네타냐후에 적대적인 아랍계 정당들이 일치단결해 아이젠코트 손을 들어준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아랍계 정당들은 아이젠코트가 주도하는 연정 성립은 지지하되 소속 의원들이 내각의 각료로 참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애초 헤르초그 대통령의 차기 총리 후보자 지명은 8일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하루 앞당겨졌다. 이는 총리직을 잃을 가능성이 커진 네타냐후 측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네타냐후는 이날 공개된 사전 녹화 연설에서 “야당과 아랍계 인사들 간의 잠재적 연합이 국가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슬람주의자들에 의존하는 이스라엘 정부는 요즘 유럽 국가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처럼 우리나라를 안에서부터 해체할 수 있다”며 “유럽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위협에 가까운 언사를 쏟아냈다. 중도파인 헤르초그 대통령 입장에선 빨리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네타냐후의 선동에 자극을 받은 시오니즘 세력 등이 극단적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우려했을 법하다.
차기 이스라엘 총리가 확실시되는 아이젠코트는 이스라엘 육군참모총장 출신이다. 정예로 꼽히는 보병 부대 ‘골라니 여단’에 병사로 입대한 뒤 장교가 돼 별까지 달아 ‘입지전적 군인’으로 통한다. 2019년 제대한 뒤 존경 받는 장군이자 육군 원로로 남는 대신 네타냐후의 호전적 성향을 비판하며 2022년 정계에 입문했다.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하거나 납치해 하마스 본거지인 가자 지구로 끌고 가는 충격적인 테러가 발생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총리인 네타냐후를 중심으로 여야를 망라한 거국 내각이 출범했다. 그때 실전 경험이 풍부한 아이젠코트도 야당 몫 장관으로 내각에 합류했다.
3년 가까운 하마스와의 전쟁 기간 중 아이젠코트는 현역 군인인 아들과 조카가 전사하는 큰 아픔을 겪었다. 이는 무력 분쟁 장기화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의 좌파 및 중도 유권자 상당수가 아이젠코트에게 공감과 지지를 보내는 계기로 작용했다.